"나비가 알을 낳으면 궁극적으로 나비가 되지만 (중간에) 애벌레가 됐다고 안주하면 세계에서 제일 큰 애벌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일 빨리 새한테 잡아먹힙니다. 자연물은 적당한 시점이 되면 변신하는데 사람은 달라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제도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빨리 바꾸는 것입니다."
2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에 기조강연자로 나선 권오현(63·사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정부가 미래에 구축해야 할 경제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지난 50년은 한국이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효율성만 추구하며 달려왔지만 이제는 세계적 저성장·과잉공급·고령화 시대를 맞은 만큼 정보화·융복합화 추진에 맞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논지였다. 변해야 할 시점에 제대로 바꾸지 못하면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처럼 성공의 덫에 갇힐 수 있다는 것. 권 부회장은 지난해 같은 자리에서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인물이기도 하다.
권 부회장은 "지금까지의 산업 관련 한국 정부의 제도는 (모든 것을 규제하고 필요한 것을 풀어주는) 포지티브 시스템이었으나 미래에는 (모든 것을 허용하고 필요한 것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연구개발(R&D) 부분에서도 자잘한 여러 중단기 사업화는 이제 대기업에서 다 할 수 있으니 정부 R&D는 거대 담론을 기반으로 한 기초연구·장기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과거 추격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길을 가야 할지가 명확하니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만 결정하면 됐지만 지금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처럼 무엇을, 왜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며 "PC·모바일 시대를 거쳐 앞으로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으면 디바이스보다 플랫폼·생태계 중심 사회가 되는데 우리는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못 갖추고 있는 만큼 제도 변경을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대학에 대해서도 "내가 다닐 때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며 학문별 융복합화와 도전적인 연구과제 수행에 더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권 부회장은 미래사회에서 "개인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실수 극복 방법, 통합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며 "대학은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이부섭 과총 회장을 비롯해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홍문종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시상과 과학계 현안 이슈에 대한 발표·토론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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