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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꽃집이 된 슈퍼뱅크
입력1999-01-08 00:00:00
수정
1999.01.08 00:00:00
지난 4일 합병 출범한 한빛은행 본점 15·16층은 며칠만에 「꽃집」으로 변해버렸다. 임원실이 자리잡은 층이기 때문이다. 비서들은 매일 40~50개씩 몰려드는 난(蘭)화분을 받아 정리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임원실 복도는 인사차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김진만(金振晩) 행장에게는 무려 300개가 넘는 화분이 배달됐고, 기업관련 업무담당 임원들의 방도 100개 이상씩 몰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난을 보낸 인사들의 면면도 거창하다. 국회의원에서 재벌 총수, 대기업 자금담당 임원, 중견기업 사장까지 내로라는 거물들의 이름표가 달려있다.
국내 제1 슈퍼뱅크의 위력을 실감케하는 풍경이다. 상업과 한일은행이 합쳐 출범한 한빛은행은 삼성, LG, 한진, 한화 등 64대 그룹 가운데 24개그룹에 대한 주채권은행이니 새 임원 취임에 꽃세례를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임원은 『축하해주는 성의를 뿌리치기 어려워 일단 받아놓기는 하지만, 보내준 사람들의 명단을 따로 챙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빛은행 임원실이 「꽃집」으로 둔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석연찮은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언제까지 거래은행 임원이 바뀔 때마다 「꽃 도장」「눈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일까.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경제무대가 합리성과 실력만이 통하는 정글이 된 지 오래이고 기업의 금융관행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런 판에 기업 관계자들은 「친해지고 보자」식의 구태를 벗지 못해 꽃보내기에 열중하는 것은 아닌가. 일부 기업들은 벌써 한빛은행 임원 개개인의 연고와 출신학교 등을 파악, 「끈」을 찾아보려 전전긍긍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지난해이후 은행권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수술을 받았다. 2만명이 넘는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남은 사람들은 낡은 대출관행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줄만 잘 잡으면 은행돈은 내 것』이라는 생각을 기업이 버리지 못하고 임원들도 「인연의 줄」을 끊지 못한다면 은행 개혁은 무용지물이다.
이제는 은행도 고객도 함께 변해야 할 때다. /한상복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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