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을 강조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8일 내수대책을 주문했다. 이는 사실상 경기부양을 지시한 것으로 총선 이후 오는 6월까지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예고돼 있다. 이미 기획재정부 등 경제 관련 부처는 감세 및 규제완화는 물론 재정 조기 집행, 공기업의 사회간접자본(SOC) 확대 등 부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 MB 측 인사 세 명이 임명된 것과 맞물려 이르면 5월 금리인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 소비 활성화 주문=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내수가 너무 위축되지 않도록 관련부서에서 관심을 갖는 게 좋겠다”며 소비 활성화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번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을 얘기했지만 내수가 너무 위축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내수가 위축되면 서민들이 더 어려워진다. 그런 점을 챙기고 내수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공개적으로 경기부양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셈이다. 지난 3월 말 정책 우선순위를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두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할 때 경기운용 기조의 U턴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는 내수위축으로 일자리 창출에 비상이 걸리면서 서민생활도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발표된 각종 지표에서는 경기둔화 추세가 명확히 드러난다. 통계청의 ‘3월 소비자전망조사’에 따르면 소비자기대지수는 전달보다 3.4포인트 하락한 99.7을 나타내며 1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기가 상승기조를 지나 후퇴단계에 들어섰다며 ‘둔화’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3일 재정부의 그린북에서도 “세계경제 둔화, 유가 상승, 국제금융시장 불안, 중국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기하방 위험요인이 지속되고 있다”며 “경기상승 모멘텀을 유지하도록 정책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월까지 경기부양책 쏟아진다=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측은 겉으로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씀은 (경기부양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내수를 살리는 방안을 마련해보라는 뜻이었다”며 “재정부에서는 ‘그런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했으며 회의 내내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주된 화제였다”고 회의장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경기부양책 발표는 기정사실이라는 게 과천 관가의 분위기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카드 사태를 경험한 탓에 ‘인위적’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크지만 경기둔화를 막기 위한 재정정책 등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최중경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일 “모든 정책은 선제적으로 해야 하는 만큼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가시적으로 민간투자 활성화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 대대적인 부양책을 예고했다.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물가보다 경기가 최우선 경제운용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재정부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총선 이후로 미뤄놓았던 내수부양책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20일 시행되는 출퇴근 시간 때의 고속도로 통행료 50% 인하. 이후 정부는 이달 말까지 의료ㆍ교육ㆍ관광 등 서비스수지 개선대책, 지방교부금 조기 배정 등의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 올 상반기까지 법인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및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을 담은 법률 개정안 처리가 추진된다. 광역경제권 발전계획, 골프장 규제 완화, 은행 인허가 조건 완화 등의 대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정부는 특히 이미 발표된 실천계획 가운데 내수대책을 앞당기는 한편 재정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리인하 시기가 앞당겨질지도 관심거리다. 실제 서울채권시장에서는 금리인하 전망이 급속히 퍼지면서 국고채 금리가 하락세를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이미 한은이 이르면 5~6월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하반기로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국내경기 둔화는 점차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교체된 금통위원 가운데 강명헌ㆍ최도성 위원이 MB 측 인사로 분류되고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지하는 김대식 위원도 최근 금리인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이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