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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종말(되짚어본 한보미스테리)
입력1997-04-24 00:00:00
수정
1997.04.24 00:00:00
이종석 기자
◎「철강왕」 꿈 한낱 물거품으로…/자금난·재고로 작년부터 경영삐걱/특혜성 대출도 어음막기엔 역부족/증권가에 부도설 파국징후 불거져/금융권 “깨진독에 물붓기” 한보 돈줄 차단/「주식담보」 최후제의도 외면… 거함 침몰96년 3월11일 서소문 한보건설빌딩 16층 회장실.
『앞으로 기업경영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투명경영에 나서겠습니다.』 『철강사업에는 모두 4조3천억원이 투자될 예정이지만 이 가운데 3조원은 이미 투자가 끝났고 나머지 투자금액조달에도 별 문제가 없을겁니다.』
바로 전날(10일) 한보그룹 제2대 회장에 공식취임한 정보근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었다.
정회장은 이날 한보그룹의 어두운 이면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투명경영을 제시하는 한편 향후 당진제철소 투자과정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그러나 약관 34세의 젊은 회장이 밝힌 당찬 포부와 자신감은 불과 1년이 못돼 한낱 물거품으로 사그라져 버리고 만다.
○파국의 시작
온갖 의혹과 질시속에서도 늠름하게 버티던 한보철강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
당진제철소 건설에 당초 예상보다 2조원 가까이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된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철강경기마저 고꾸라지면서 그룹 주력인 한보철강은 자금난과 재고누적이라는 이중고에 허덕이기 시작한다. 워낙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데다 연이은 신규기업 인수로 인해 그룹 자금사정 역시 말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한보철강은 매일 매일 피를 말리는 「어음과의 전쟁」에 나서야 했고 그룹은 그룹대로 파멸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하루 하루 교환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는 일이었다. 수십, 수백억원대의 어음은 연일 저승사자처럼 제집을 찾아 돌아왔고 한보그룹 자금부 직원들은 이를 처리하느라 자정까지 퇴근을 하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파국의 전조는 증권시장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소리없이 한보 부도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증권가 정보지에는 한보부도가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급기야 검찰이 나섰다. 검찰은 한보부도설을 유포한 혐의로 바클레이즈증권 서울지점장인 주모씨를 소환했고 이같은 사실은 당시 각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한보부도설이 공론화되는 사건이었다.
금융기관들도 난리였다. 각 은행 융자부는 매일 밤 한보철강에 자금결제를 독촉하는 전화를 걸어야만 했고 종금사 일선부서에는 한보어음을 무조건 교환에 부치라는 밀명이 떨어졌다.
사채시장 역시 한보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출처불명의 인물들이 수백억원대의 한보철강 어음뭉치를 들고와 파격적인 할인율을 제시하며 와리깡(어음할인)을 요구했다. 『30%이상 할인해도 좋다. 필요하다면 세금계산서를 붙여 진성어음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며 할인을 닥달했다. 평상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지만 자금순환의 안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채꾼들이 이를 쉽사리 받아줄 리 만무했다.
한보는 그러나 저력있는 기업이었다. 어디서 구해오는지 몰라도 회사 중역들은 쉼없이 금융권 대출을 뽑아냈고 이는 연일 치러지는 「어음과의 전쟁」을 막는 일회용 총알로 소진됐다. 후일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자금은 정총회장이 청와대 수석과 국회의원들을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끌어온 특혜 대출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한보철강이라는 거함의 침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융권은 이미 「깨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우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지 오래였고 지난 1월20일 제일은행이 2백50억원 상당의 한보철강 물품대금을 갚아 주는 것을 끝으로 금융지원은 차단된다.
결과는 뻔했다. 당장 21일 돌아온 어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동안 밤을 새워 어음을 막아왔던 일선 자금부직원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이른 귀가길에 올라야만 했다.
한 세대를 풍미하며 재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던 한보그룹의 운명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운명의 5시간
정태수 총회장이 죽어도 잊지 못할 운명의 1월23일.
그날의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반전과 긴장, 경악속에 급박하게 진행됐다.
이날 한보철강을 최종 부도처리한 금융기관 대표자회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보그룹에 대한 자금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자리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드러났고 이는 국내 기업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된다. 한보호가 침몰하던 그날의 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월23일 상오 10시10분. 이세선 제일은행전무가 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신광식 행장은 아침부터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이전무는 『정태수 총회장이 오늘 아침 주식담보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며 『당진제철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완공시켜야 한다』고 서두를 열었다. 한보철강 문제가 제3자 인수 또는 은행관리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암시였다.
이는 지난 1월8일 제일 조흥 외환 산업은행 등 4개 채권단행장들이 정총회장에게 제시한 「주식양도 및 경영권포기 요구」가 사실상 받아들여졌다는 뜻으로 한보철강 처리수순이 앞으로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날 석간신문에는 일제히 「한보철강 은행관리 유망」이라는 제목이 시커멓게 뽑혀 나왔다.
제일은행은 이후 점심시간이 막 끝난 하오 1시30분 『한보철강 처리문제와 관련, 오늘 하오 4시에 금융기관 대표자회의를 소집한다』고 채권금융기관들에게 통보했다. 대부분의 채권기관들은 이를 정총회장의 경영권 포기 이후 한보철강에 대한 구제금융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쯤으로 받아들였고 관계자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결지인 제일은행 대회의실에 모여 들었다.
시간은 이미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대표자회의는 시작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장내가 술렁였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여기저기서 우려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시각 신행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보측에 파견된 내부직원의 전화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정회장의 주식포기 각서를 받으러 나간 직원의 보고전화였다. 신행장은 포기각서를 인수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는대로 대표자회의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혀 뜻밖의 내용이 보고됐다. 한보측 변호사가 각서를 가져오겠다며 나간후 수시간이 되도록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좀더 기다려보자…』 신행장은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4시를 한참 넘기고서도 반가운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기업여신업무를 담당하는 박석태 상무가 먼저 나섰다. 기자들에게 『한보측이 각서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고 전했다. 상황이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4시25분. 술렁거리는 대회의실에 신행장이 들어섰다. 『주식담보 취득을 위한 절차가 완결되지 않아 대표자회의를 무기연기한다』 장내는 소란스러워졌고 분위기는 부도를 감지하는 쪽으로 급변했다.
이로부터 30여분후 김종국 한보그룹 재정본부장이 주식현물이 가득 든 007가방을 들고 신행장실을 찾았다. 주위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것도 일순간. 김본부장은 『주식을 제공하되 담보용이 아니며 단지 보관시키는 것일 뿐』이라며 신행장에게 보관증을 써줄 것을 요구했다. 주식담보를 생각하고 있던 신행장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화를 버럭냈고 한보와 금융단간의 마지막 협상은 이렇게 무위로 끝나버리고 만다.
이후 1시간여쯤이 흘렀을까. 청와대쪽에서 한보부도를 공식확인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신행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이미 예감한듯 장내는 쥐죽은듯 고요했고 그날의 길고 길었던 5시간여의 채권은행장회의는 그렇게 마감됐다.
한보철강은 이후 법정관리신청, 포철위탁경영의 수순을 거쳐 재활을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한보그룹과 정총회장을 비롯한 일가 관계자들은 그동안 온갖 부정과 비리로 점철된 기업이면사를 낱낱이 까발겨야만 하는 또다른 시련에 직면해야만 했다.<이종석>
◎한보일지 (96년∼현재)
96. 3.10 정보근회장 취임(투명경영 선언)
96. 4 이철수 제일은행장 한보사업전망 불투명하다 재경원 청와대 보고
96. 6 당진제철소 건설비 과중 철강경비 부진으로 재고누적 . 자금사정악화(2금융권 여신회수 나서 연말께 자 금난 최악)
96. 6 신광식 제일은행장 취임(9개월간 2498억 대출, 4억원 수수)
96. 8 강남 노른자위인 개포동 567소재 녹지 1만9천평 (1백60억원) 매각 발표
96. 9 신광식 한국신용정보에 의뢰 한보철강 사업성 검토( 자체 자금조달능력 불량하며 2002년까지 누적적자 가 2조2천여억원에 달할 것)
96.10 황병태, 산업은에 5백억원 대출청탁. 12월 2억 수뢰
96.11 대동조선 인수
96.11 현대그룹이 한보철강 인수의사 타진(정보근 답변에서 밝힘)
96.11.25 정태수 회장 신행장 찾아와 추가대출 문제 담판(『 이제 와서 대출 그만두면 어떡하나』 『우리도 할 만큼 했다. 담보 더 가져와라』)
96.11말 정회장 우행장에게 1천억 대출 요구. 우행장 이석 채 수석 만나 『한보담보가 3500억원인데 150 0억원만 대출했다. 더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이에 이수석 『연말이니까 부도내서는 곤란하다』고 답변)
96.12 부도막기 위해 결제자금으로 금융권 4609억 긴급 지원
96.12.3 조흥은행 1천억원 대출(정회장 우행장에게 『높은데 서 다 얘기됐으니 안심하라』)
96.12.9 제일은행 한보철강에 자구계획 이행 촉구공문 시달
97. 1.8 상오 4개은행장 회의(정회장에게『주식양도와 경영권 포기하지 않을경우 추가대출 어렵다』고 통보)
97. 1.8 하오 신광식 행장 이석채 수석 방문
97. 1.9 정회장 주재로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당진제철소 시설 및 운영자금 부족분조달을 위해 시가 3천억원 상당 의 부동산 매각 결정.(▲서소문 한보건설 빌딩 6 백억원 ▲송파구 장지동 건설자재하치장부지 4만평 2천억원 ▲개포동부지 1만1천평 5백억원 등)
97. 1.12 정한근 부회장 기자회견(현대측 철강인수설 부인, 정상화자신)
97. 1.20 정보근 회장 신행장 면담(이튿날 김시형 산은 총재 도 방문)
97. 1.22 이석채 수석 추가대출 중단 전화(은행권 부도불사로 태도 돌변 계기)
97. 1.23 제3자 인수설 유력하다 부도로 최종 낙인.2시 최 종담판 결렬(『경영권포기하면 눈물값 보장하겠다』 회유 거절).4시 채권단회의(회의도 못한채 3분만 에 산회).5시30분 부도결정.7시30분 정총회장 방배동 자신의 집에서 24개 계열사 사장단회의 긴 급 소집. 경영권포기 결정. 밤 9시 경영권 포기 각서 싸들고 제일은행에 백기투항했으나 거절당함
97. 1.24 정총회장 퇴진
97. 1.25 포철 위탁경영 수락
97. 1.27 채권은행단 당진제철소 완공까지 자금지원 합의
97. 1.28 한보철강 법정관리. 당진제철소 일부 가동 중단
97. 1.29 채권은행단 협력업체 자금결제 위해 5천7백억원 지 원
97. 1.30 채권은행단 1천6백억원 우선 지원
97. 1.31 정총회장 구속 수감
97. 2. 4 포철 위탁경영인으로 손근석 포스코개발회장 선임
97. 2. 5 한보철강 당좌거래 재개
97. 2.12 한보에너지 상아제약 재산보전처분 결정
97. 2.19 검찰 한보특혜대출 의혹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97. 4. 7 한보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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