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식는데 정부는 별달리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경기가 여기서 조금만 더 꺾이면 우리 경제는 금방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수 있습니다."
김인철 한국경제학회장(성균관대 교수)이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던진 고언이다. 정부와 금융통화당국이 이제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냐, 3%대냐를 기록할 것이냐를 두고 설전을 벌일 때가 아니라 그야말로 '제로 성장'이냐, '마이너스 성장'이냐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고위관계자도 "3ㆍ4분기 경기가 2ㆍ4분기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기 어렵고 4ㆍ4분기는 전 분기보다 더 (경기가) 꺾일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최근 경기전망에 대한 박재완 기획재정부의 공식적인 발언 수위도 예전보다 어두워지기는 했다. 그러나 경기침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연간 2%대 후반이나 3%대 경제성장률은 양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 상황을 사전적인 의미의 경기침체로 볼 수는 없다. 경기침체의 사전적 정의는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전적 정의다. 또한 경기가 2분기나 연속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에는 이미 정부가 대응해도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경기침체 우려를 부인하는 것은 기업과 소비자의 투자ㆍ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들도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푸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정부가 경기 비관론을 지나치게 경계하다가 자칫 현재의 경기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숨기거나 미루는 패착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의 경기 상황에 대해 보다 냉정한 분석을 내놓되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거시적 정책수단이 마땅하지 않다고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자신감 결여는 당장의 경기둔화보다 더 위험하다.
정부는 이른바 '스몰볼'이라고 이름 붙인 미세단위의 경제규제 완화대책을 시리즈로 내놓으며 기업투자 심리를 살리겠다며 총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대책만 갖고는 침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분석이다. 침체는 쓰나미처럼 거대한 흐름으로 다가오는데 정부는 멀리서 오는 너울은 보지 못한 채 눈앞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용돌이만을 바라본 채 지엽말단적인 대책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시간이 촉박하지만 규모에 연연하지 말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비롯한 국가 재정집행의 규모를 최대한 빠르게, 더불어 보다 더 늘리고 통화와 금리정책 등 모든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 거시적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재정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 부문의 고용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당분간 늘기 힘든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자로 쏟아져 나오면서 자영업대란까지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정건전성을 위해 불요불급한 지출은 줄이더라도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재정지원은 감축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산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990년대 당시 일본 2위 자동차업체 닛산이 도요타와 비슷한 규모의 차종을 생산하면서도 R&D투자를 절반 수준밖에 하지 못해 세계 시장에서 부침을 겪고 결국 르노그룹에 손을 벌려야 했던 상황을 정부가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융규제 완화뿐 아니라 취득ㆍ등록세 인하 등 거래세 인하 조치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더불어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할 시점이 됐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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