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이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1%대 초저금리 시대에 상대적 고금리 매력으로 수요가 급증하던 지난 상반기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회사채 수요를 보여주는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의 회사채도 미매각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있어 회사채 시장의 침체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 'AA-'인 회사채 3년물 신용스프레드는 지난달 31일 31.3bp(1bp=0.01%포인트)에서 21일 39.7bp로 8.4bp 상승했다. 신용등급 'A+' 회사채 신용스프레드는 지난달 31일 71.3bp에서 지난 21일 79.7bp까지 올랐다. 이는 미국의 금리동결 이후 한국은행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국고채 금리가 내려가고 있는 반면 회사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2일 전날보다 0.7bp 오른 1.624%에 마감했으나 21일 1.61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태다.
스프레드가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채 금리가 올라가고 반대로 가격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채 발행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가게 된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운용역은 "이달 초에 비해 신용등급 'A'급부터 'AA'급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가 평균 8~10bp가량 올라간 상태"라며 "A급 회사채에서 시작된 신용스프레드 상승세가 AA급 회사채로까지 파급되고 있다"며 "7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문제가 불거진 이래 얼어붙어버린 회사채 시장의 투자심리가 살아나기는커녕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회사채 비중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사채나 은행채 편입을 확대하고 있다. 박진영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선업체 3사의 실적 충격 이후 국민연금이 회사채 투자에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들 기관투자가는 운용사들에도 회사채의 익스포저를 줄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한계기업 등의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 회사채 투자에서 손실이 날 수 있는 만큼 투자자들의 보수적인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운용사의 채권운용역은 "건설·조선업 등 수주산업 회사채를 중심으로 매물이 쌓이고 있다. 매도하고 싶어도 이것을 소화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했다.
발행시장에서의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 간의 수요 '양극화'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아도 펀더멘털이 좋지 않으면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생기거나 반대로 낮은 신용등급에도 기업 실적 전망이 좋으면 수요예측이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7일 2·3년물 총 800억원 규모의 수요예측을 진행했던 한진(002320)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전액 미매각이 발생했다. 신용등급 'A-'인데 등급전망이 '부정적'이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달 3년물 2,000억원의 수요예측 결과 1,500억원의 미매각을 냈던 대한항공(003490)(신용등급 'BBB+')도 리테일 시장에서 미매각된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로 태광실업은 15일 실시한 3·5년물 회사채 500억원 수요예측에서 1,000억원의 주문이 몰려 발행금액을 700억원으로 늘렸다. 신용등급 'A'이지만 다국적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 협력업체 중 거래지위 3위의 우수한 사업지위와 안정된 수익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적어도 연말까지는 현재와 같은 위축된 시장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 분기 말과 연말은 보험사 등 장기 투자기관들이 결산을 앞두고 이익실현을 위해 채권을 매도해 회사채 시장에 비수기로 통한다. 여기에 투자심리 위축이 더해지면서 기관투자가들의 몸 사리기가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소라 유진투자증권 크레딧애널리스트는 "조선·건설업체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미청구공사에 따른 추가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어 이들 수주산업을 중심으로 회사채 시장의 전반적 투자심리 위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회사채 투매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현재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한 증권사 딜러는 "회사채 시장 전반이 나빠지면 우량 회사채조차 매도 주문이 대거 나타난다"며 "BNK캐피탈의 렌털 계약 분쟁 여파로 여전채(여신전문금융채권)를 매도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회사채 전반의 투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