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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분쟁 중기죽인다] 1. 개발하면 뭐합니까
입력1999-05-03 00:00:00
수정
1999.05.03 00:00:00
이규진 기자
우수한 기술과 아이디어·디자인을 도용하는 특허침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많은 돈과 노력·시간을 투자해 아이디어 상품이나 우수기술 제품을 개발, 인기를 얻으면 삽시간에 모방제품들이 판을 친다.특허침해를 당한 기업은 법적 대응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1~2년이나 걸리는 시간과 막대한 비용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는다. 문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에서도 계속 모방제품이 시중에 유통돼 재산상 손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신속하고 엄격한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 공업국들은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으로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국내기업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특허분쟁을 조정하고 시비를 가려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몫이다. 특허분쟁의 폐해를 알리고 허술하고 유명무실한 특허보호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특허분쟁, 중기(中企) 죽인다」를 심층 취재,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열심히 개발하면 뭐합니까? 우리 제품이 나온 지 3개월도 안돼 모방상품을 만드는 업체수가 벌써 열군데를 넘어섰습니다』
국내 최초로 반지에 IC칩을 내장, 두 개의 반지가 맞닿으면 「아이 러브 유(I LOVE YOU)」 소리가 나는 「말하는 반지」를 개발, 특허출원한 박진규(朴振奎) 코리언성산 부사장. 그는 다른 사람의 특허를 마음대로 도용한 제품을 버젓이 시중에 유통시키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도용한 업체 중 한곳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한마디로 「배째라」는 식입니다. 「법적으로 해봐라. 결론이 나기 전에 팔아먹을 만큼 팔아먹고 튀겠다.」 그러더라구요.』 朴부사장은 이들 모방업체 때문에 80만세트, 약 30억원 이상 되는 일본수출건을 빼앗겼다. 내수시장도 많이 잃었다. 다행히 매출이 급성장하고는 있지만 모방업체들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말하는 반지 말고도 개발하고 있는 전자 액세서리가 많아요. 여기에 들어가는 개발비도 엄청납니다. 그런데 개발해놓으면 또 곶감 빼먹듯 모방해버릴 것 아닙니까.』
특허침해 때문에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심지어 특허분쟁으로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입어 도산위기에 몰리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개발여력이 없어진 중소기업들이 다른 기업의 신제품이나 상표·디자인 등을 몰래 베끼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한국 전통가구로 업계에 정평이 나 있는 S가구는 최근 상표와 디자인을 도용하고 있는 4개업체 때문에 죽을 맛이다. 피해액만도이 15억원이 넘는다. 『디자인을 훔쳐 모방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합쳐서 월 2억원어치 이상을 판매하고 있어요. 모방제품이 나온 지 8~9개월이 되는데 손해액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K사장은 『상표를 도용한 업체도 전국적으로 20여개나 된다』며 『가뜩이나 내수침체로 어려운 때 모방업체들 때문에 회사경영이 말이 아니다』고 고개를 떨궜다.
판 디스크구조의 제동력 향샹장치를 개발, 미국특허를 딴 한국표준기기(대표 고성란·高誠蘭)도 특허침해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개발에 참여했던 전(前)직원이 이를 약간 변형한 제품을 시중에 유통시켜 한국표준기기측에 지금까지 1억3,000여만원의 피해를 입혔다. 김주원(金周源) 부장은 현행 특허제도는 개발자보다 모방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현행 특허법은 약간의 설계변경만 하면 무조건 출원을 받아주고 있다』며 『모방업체가 유사제품에 대한 특허출원을 해놓고 마치 자기가 개발한 것처럼 유통업체들을 속이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특허침해는 오래전부터 업계의 고질화된 관행으로 치부돼왔다. 90년대들어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보호제도가 한층 강화됐지만 여전히 산업계 곳곳에서 특허침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특허침해로 피해가 큰데도 법적 구제를 받는 데는 애로가 많다. 소송을 하면 최소한 1~2년의 시간이 걸리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 중소기업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송사에 휘말리면 집안이 거덜난다」는 말처럼 특허분쟁이 나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은 힘들어진다.
결국 특허침해가 광범위해질수록 기업의 에너지는 분쟁을 해결하는 데 쓰여 정상적인 기업활동은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 이에 따라 기술 및 디자인 개발의욕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우수기술을 가진 기업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특허관련 제도를 대폭 개선, 확충해 신속하고 강력하게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주는 일이 시급하다. 특허권자들을 강도높게 보호하는 것은 우리 산업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을 막는 길이다. 특히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세심한 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규진 기자 KJ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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