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 이란 금융제재 높여라" <br>"멜라트銀 폐쇄절차 이어 추가제재 무리" 속내<br>자산동결 조치는 국내 법적 근거 없어 불가능<br>원화결제 막자니 중소 수출업체 큰 타격 불보듯
데이비드 코언 미국 재무부 신임차관 내정자가 10일 우리 정부에 대이란 추가 제재를 촉구한 것은 '동맹국으로서 최소한의 성의를 표시하라'는 압박으로 풀이된다. 이란이 최근 "어떤 제안도 우리의 우라늄 농축 계획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밝히면서 미국으로서는 추가적인 대이란 압박이 필요했고 여기에는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에 성의를 보일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압박으로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사실상 폐쇄 절차에 돌입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제재안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정부의 속내다.
◇"한국, 이란 제재 성의표시 해라"=당초 지난 7일 미국 재무부가 코언 내정자의 방한 소식을 발표할 때만 해도 우리 정부는 대북 금융제재와 대이란 제재가 동시에 다뤄질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날 과천 기획재정부를 방문한 코언 내정자의 입에서는 'North Korea(북한)'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온전히 이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추가 제재안 마련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국의 압박이 간결하고 강한 만큼 우리 정부가 느끼는 압박감도 크다. 지난해 8월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조정관이 단 한 번 방문한 것만으로 우리 정부는 불과 한 달 만에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중징계하는 내용의 대이란 제재안을 신속히 발표했다. 이번에 방한한 코언 내정자는 테러ㆍ금융제재 분야를 전담하는 차관으로 미 정부 내에서 '저승사자'로 불릴 정도로 금융제재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2005년에는 김정일 통치자금을 겨냥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을 주도하며 북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만큼 추진력도 탁월하다. 그런 그가 공식 임명장도 받기 전에 한국을 찾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부에 대이란 제재를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 뾰족한 묘수 못 찾아=미국의 압박에 우리 정부의 처지는 곤란하다. 지난해 첫 제재안을 발표할 당시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이란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사항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북핵과 관련이 있어 핵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조치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활동과 관련한 물품대금 결제창구로 이용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미국이 '눈엣가시'로 여겼던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사실상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해 10월, 2개월 영업정지 이후 한국은행이 신규거래를 허가해주지 않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 있다. 멜라트은행 측은 "영업중단이 계속될 경우 서울지점을 철수하겠다"고 3월 금융감독원에 통보했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이렇다 할 회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에 성의를 보일 만한 수단도 마땅치 않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자산동결조치를 단행했지만 우리나라는 법적 근거가 없어 불가능하다. 우리은행 등을 통해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결제 계좌가 개설돼 있지만 이는 민간 무역업체들의 유일한 자금이동 통로인 만큼 이를 막을 경우 우리 업체들의 차질이 우려된다. 우리나라와 이란은 지난해 교역규모 115억달러, 교역순위 13위의 대규모 무역 상대국이다. 특히 교역규모 100만달러 미만인 중소 수출업체가 81%에 달할 정도로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일단 관계 기관 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추가제재 조치 방안을 마련하고 미국에 회신하겠다는 큰 틀의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원화결제계좌 중단이라는 초강수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추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석유의 경우 미국이 제재대상으로 정하지 않은 만큼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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