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리고 싶어도 빌려주는 곳이 없다.”(전자부품업체 K사 사장) 한국은행이 유동성 조절 조치를 취하자마자 우려했던 대로 중소기업들이 잇달아 자금위기에 노출됐다. 금리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금 파이프라인 자체가 막히면서 운전자금은 물론이고 심지어 종업원들의 급여조차 줄 수 없는 처지인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IT 부품사인 H사 사장은 “은행이나 금융권은 분위기만으로도 한발 빨리 여신을 축소한다”며 “한은의 유동성 조절 조치는 이미 중소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4일 발표한 ‘최근 한은 유동성 조절 조치에 대한 평가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지급준비율 인상, 총액대출한도 축소 등 일련의 유동성 조절 조치가 금리상승과 은행의 기업대출 축소 등으로 이어지며 중소기업에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분석됐다. 상의는 지준율 인상의 경우 시중은행의 대출 축소로 이어져 대기업과 달리 금융권 대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11월 기준 은행권의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비중은 91.7%, 대기업은 8.3%로 중소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유동성 조절 조치가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중소기업에 타격이다. 금리상승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수익성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1월23일 한은이 지준율 인상을 발표한 후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 금리는 4.61%에서 한달 새 4.86%(2006.12.29)로 상승했다. 시중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인 연 2.75%로 제공되던 총액한도대출이 2007년 1월부터 9조6,000억원에서 8조원으로 축소되며 금융권의 중소기업 대출 회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H사 사장은 “대기업의 경우 현금유보율이 높지만 중소기업은 지원이 끊긴다면 당장 공장을 돌릴 수도 없다”며 “이미 지방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한은의 조치를 중기 대출 축소로 이해하고 중기 대출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상의는 한은의 유동성 조절로 인한 금리상승이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금리상승이 엔화 등 저금리 외화의 차입수요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외화공급 우위 기조가 강화돼 원화 강세를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또 금리상승은 가계의 이자 상환부담을 가중시켜 민간소비를 더욱 둔화시킬 것이라고 상의는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529조4,000억원으로 시중금리가 0.5%포인트 상승할 경우 가계는 2조6,00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유동성이 풍부하다고 중소기업의 돈줄을 막는 유동성 조절 조치보다는 해외투자 허용 확대, 중장기 국공채 발행 등을 통해 유동성을 장기 생산자금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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