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분기 기업 실적 하향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통상적으로 1·4분기는 잠재적인 부실을 선반영하는 4·4분기나 기후 영향이 큰 3·4분기와 비교할 때 실적 변수가 적은 만큼 추정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높은 업종과 종목은 실적 시즌에 주가 방향이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건설과 유틸리티, 의료 업종이 올 1·4분기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판단했다.
2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증권사 1곳 이상이 실적 전망을 내놓은 상장사 237곳의 영업이익 합계는 31조3,45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 35조432억원과 비교하면 10% 넘게 감소한 수치다. 다만 실적 추정치 하향세는 크게 줄었다. 지난달 3일 32조원대로 한 달여 동안 3조원 가까이 급감했던 영업이익 추정치는 2월 한 달 동안 1조4,000억원이 줄었고 이달 들어서는 3,000억원가량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은성민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4분기 실적 추정치의 하향세가 이어지면서 상장사의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분기 영업이익 성장률은 현재 8%대로 전망된다"며 "1·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다음달 말까지는 추정치 조정이 이어지겠지만 영업이익 성장률이 이미 한 자릿수로 하락한 만큼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장의 눈높이가 급속히 낮아진 데는 지난해 4·4분기 실적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대외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2월 수출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데다 미국 경기 역시 회복세가 예상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증권사들이 기업들의 실적을 서둘러 하향 조정했다는 얘기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실적과 매크로 변수는 떼놓고 얘기하기 힘들다"며 "올 들어 중국과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증권사들은 서둘러 1·4분기 실적을 하향 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4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점도 1·4분기 실적 하향 시기가 빨랐던 요인으로 꼽힌다. 서명찬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4·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의 추정치를 크게 밑돌자 애널리스트들이 서둘러 기업들의 1·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도 내려 잡았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눈높이가 이미 낮아진 상황에서는 실적 개선 폭이 상대적으로 큰 업종에 관심이 간다. 전문가들은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 갈등으로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실적 개선세가 뚜렷한 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는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1·4분기 성과가 눈에 띄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으로는 산업재가 꼽힌다. 산업재 업종의 1·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7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산업재 중 건설사들의 영업이익 개선세가 기대된다. 주요 건설사들은 지난 2011년 이후 저가 수주 물량이 대부분 소진돼가는 데다 올해 추가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을 지난해 4·4분기 선반영했다. 지난해 1·4분기 2,1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삼성엔지니어링이 올 1·4분기에는 26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할 것으로 기대되고 GS건설은 5,443억원의 영업손실이 301억원으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의 1·4분기 영업이익은 1,30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4% 뛸 것으로 보이고 두산건설도 두 배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유틸리티업종도 실적 기대감이 크다. 특히 지난해 6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한국전력의 실적 기대감이 크다. 한국전력의 1·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10.82% 증가한 1조3,867억원으로 집계됐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유연탄 수입 가격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데다 월성 3호기의 가동 재개가 임박해 원자력발전소 가동률도 86% 수준까지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원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든 만큼 한국전력이 흑자 구도로 돌아섰다는 것을 1·4분기 실적을 통해 수치로 증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업종도 1·4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과 녹십자 등 실적 추정치가 있는 5곳의 올 1·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류주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업들의 1·4분기 실적에 대한 시장의 전반적인 기대가 낮아지고 있지만 차별성을 나타내는 종목에 대한 관심은 유효하다"면서 "특히 흑자 전환이 예상되는 건설업종과 제약·바이오업종,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유틸리티업종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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