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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융·복합시대…도전하는 사람만이 희망 있다"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br>특별인터뷰 황창규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장<br>우리 민족 장점은 응용능력 한분야서 1·2·3등도 좋지만 1등 품목 늘리는게 더 중요<br>국가차원 명확한 비전 제시 인재들 도전환경 제공할 것



"21세기는 이종교배가 횡행할 융복합의 시대입니다. 과학자가 주도해서 만드는 기술은 곧 한계에 봉착할 겁니다. 디지털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술이 사랑 받기 위해서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또 앞으로의 세상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앞장서 가는 인재가 호령할 것입니다." 황창규 지식경제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은 "우리 선조들의 장기 중 하나는 이질적인 것들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융복합 능력"이라며 미래사회는 한국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인 응용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특히 미래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들과 젊은이들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리스크(위험)를 감수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황 단장은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인재밖에 없는데 인재들이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희망이 없다"며 "엔지니어들에게 비전을 줄 수 있는 전략을 만들고, 혹독하게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하는 환경을 만들고, 성공했을 때 충분히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서울경제신문 창간 50주년을 맞아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한국의 과거 경제개발 50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50년에 대한 희망찬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1대 무역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기적을 이뤘다고 하지만 이는 필연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없는 대신 훌륭한 인재를 갖고 있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융복합형 혁신인재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는 이미 세종대왕이라는 최고의 융복합형 인재를 배출한 바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질적인 것들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습니다. 세계 언어학자들은 한글을 전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문자로 인정합니다. 또 언어학ㆍ문학ㆍ음성학 등을 버무려 만든 당대 최고의 통섭학인 용비어천가와 악학궤범, 그리고 고려청자•천자통총 등 그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경제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잠재력은 훨씬 전부터 태동돼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발전시켜나가야 할 부분과 넘어서야 할 장애물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응용능력입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 민족은 기존에 있는 것들을 요리조리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할 융복합 기술 개발에 있어 태생적으로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가장 큰 단점으로는 원천기술 개발능력이 취약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는 원천기술 개발에 들여야 할 노력으로 시장 연계형 상용화 기술 개발에 더욱 역점을 둬야 합니다. 강점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를 여러 개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대기업들도 국가 차원의 중장기 전략하에 성장해야 합니다. 민간 사업에 정부가 규제하고 개입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국가 차원의 전략이 미흡하다 보니 어떤 업종은 공급이 너무 초과하고 어떤 업종은 많이 부족합니다. 대기업이라고 문어발식으로 모든 걸 다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어느 대기업이 어느 특정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다고 해서 또 다른 대기업이 같은 분야에 뛰어드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 분야에서 세계 1•2•3등을 석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등인 분야를 많이 늘리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 관점에서는 더욱 바람직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략입니다. -전세계는 지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예상하십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산업의 변곡점이 존재해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창조돼왔습니다. 가령 남북전쟁 재건을 위해 철도수송이 중요해졌고 이후 자동차가 수송의 새로운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철강산업이 발전했습니다. 미래의 변화에는 그 저변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상이 하나 있습니다. '기술 중심적 접근'이 아닌 바로 '고객 중심적 접근'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관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펼쳐질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의 변화입니다. 이제 모든 기술은 연구소의 영역을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기술적 성과만을 지향하는 기술은 앞으로 기술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첨단과학기술 분야는 무엇입니까. ▦바이오•항공우주•에너지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인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보기술(IT) 분야입니다. 우리가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할 분야는 반도체•정보통신 등을 비롯한 IT가 그 기반이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유망한 분야라도 이제부터 기초 공부를 시작해야 할 분야라면 과감히 그 비중을 줄이고 우리가 남들보다 확실히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집중해야 합니다. -수출을 계속 늘려나가기 위해 어느 분야, 어느 품목에 집중해야 할까요.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분야의 시장지배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강력한 경쟁 상대인 중국은 세계 1위 품목 수가 지난 2000년 698개에서 2007년 1,128개로 늘어난 데 비해 우리는 87개에서 53개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단순히 숫자의 감소만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철저히 분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탑재한 품목이 1등을 하다 내려왔다면 이거야말로 빨간불입니다. -기술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톱다운 방식의 전략과 리스크 테이킹하는 도전정신입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해야 합니다. R&D 전략기획단이 국가 차원의 명확한 R&D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습니다. 응용기술이건 원천기술이건 이제부터 그것은 시장성을 전제로 한 '목표 시장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원천 연구와 응용 연구가 따로 놀아서도 안 됩니다. 원천연구→응용연구→사업화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미래를 책임질 만한 믿음직한 후보 기술이라면 비록 중도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체제를 제도적으로 만들겠습니다. -메가트렌드에서 벗어난 어떤 먹을 거리를 찾으실 계획입니까. ▦메가트렌드를 쫓아만 가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놓쳐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늦었지만 반드시 쫓아가야 할 분야도 있고 우리가 먼저 시작했지만 지금 포기해도 괜찮은 분야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미래를 내다보건대 지금의 메가트렌드가 중장기적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이 서는 분야에 대해서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전략을 면밀히 짜야 합니다. 메가트렌드에서 벗어난 먹을 거리를 분야별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로 들자면 전통 한의학의 과학화를 통한 신약ㆍ신소재의 개발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미래 사회는 편리하고 실용적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을 감성적으로 감동시키는 제품이 시장과 산업을 지배할 것입니다. 자유분방하지만 창조적 DNA가 충만한 인재, 자기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미치고 마음껏 즐기지만 이것이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인재, 창의의 바다에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는 인재, 이러한 인재들이 미래 인재상이 아닐까 합니다.
약력

▦1953년 부산
▦서울대 전기공학과 학사ㆍ석사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학 전기공학 박사
▦세계 최초 256MD램 개발
▦ICVC국제학회 학술위원장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장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초빙교수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생겨 나는 게 아니다"

세계 반도체 업계에 '황의 법칙'이라는 신화를 남긴 황창규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장은 과거를 돌아볼 때 "경쟁력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다"라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또 TV, 경부고속도로, 포니, 256메가 D램 개발 등을 과거 5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도약할 수 있었던 변곡점으로 꼽았다. 황 단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성취감이 컸던 경우는 256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과 7년 연속 메모리 신성장론을 실현시킨 일이다. 반면 가장 아쉬운 점은 반도체 총괄 사장으로 일하면서 시스템 LSI 분야를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 것이다. 황 단장은 "모바일 CPU, DDI 등 시스템 LSI 중 몇몇 분야는 부동의 세계 1등으로 올려놓기는 했지만 메모리만큼의 경쟁력을 다져놓지 못한 것은 지금도 매우 아쉽다"며 "후배들이 잘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끊임없이 준비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며 지난 경험에서 경쟁력이라는 것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한다. 척박한 환경의 메모리 반도체를 세계 1위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투자전략과 차별화 전략, 신시장 창출전략 등이 주효했기 때문이지만 경쟁력의 원천은 결국 정신력이었다는 지적이다. 황 단장은 지난 2005년 스티브 잡스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며 말한 "Stay foolish, stay hungry(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은 자세를 유지하라)"와 2002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16강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말한 "I'm still hungry(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를 언급하며 "듣자마자 전율을 느꼈던 말이다. 이 짧은 말 속에 평소에 추구하던 모든 것들이 함축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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