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1일 현대자동차그룹이 녹십자생명 인수를 발표하자 보험업계가 술렁였다.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던 보험업계에 현대차그룹의 등장은 업계 판도를 바꿀 만한 거대한 충격파였다. 녹십자생명은 생명보험 업계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18만4,000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현대차그룹과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감안하면 생보업계에 위협적인 존재로 급부상한 것이다. 오는 2012년 보험업계 지각변동은 인수합병(M&A) 여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년 3월 농협보험 등장과 중형 보험사의 약진 등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른바 생보 '빅3'와 손보 '빅4'의 아성을 무너뜨릴 태세다. ◇대기업ㆍ금융지주 보험사 눈독=보험시장은 최근 수년간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여왔다. 소규모 M&A가 몇 차례 있었지만 업계의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상황이 다르다. 먼저 현대차그룹의 시장진출은 막강한 파괴력를 가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HMC투자증권이 퇴직연금시장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그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HMC투자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6월 말 현재 1조8,974억원으로 점유율 5.2%를 차지했다. 이는 증권사 가운데 가장 앞서는 실적으로 현대차그룹이 올 초 퇴직연금으로 전환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말의 1,830억원(점유율 0.8%)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업계는 이러한 계열사 효과가 생보시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동양생명이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대기업에 넘어갈 경우 시장의 판도변화는 불 보듯 뻔하다"고 전했다. 또 금융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녹십자생명에 만족하지 않고 동양생명이나 ING생명 등을 추가 인수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의 보험업 진출이나 강화 방침도 업계 지각변동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금융지주는 최근 이팔성 회장이 공개적으로 동양생명 인수의향을 밝혔으며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도 일찌감치 보험사 인수 등 보험업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한 금융지주사 고위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은 은행 실적이 개선되자 보험 등 비은행권의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짜둔 상황"이라며 "기존 계열보험사들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M&A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생보 빅3, 손보 빅4 아성 위협=내년 3월 농협보험 출범도 보험업계 지각변동의 진원지로 꼽힌다. 농협 생명보험의 경우 30조원에 이르는 자산규모를 따져볼 때 빅3인 삼성생명(150조원)과 대한생명(65조원), 교보생명(60조원)에 이어 빅4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생보업계에서는 중위권의 변화도 예상된다. 최근 신한생명이 약진하는 가운데 매물로 거론되는 동양생명과 ING생명의 실적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신한생명은 아직 빅3와 비교할 수 없지만 꾸준히 성장해 중위권에서의 입지를 다지면서 상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손보업계도 최근 메리츠화재의 약진이 두드러지자 삼성화재ㆍ현대해상ㆍ동부화재ㆍLIG손보로 구성된 빅4가 빅5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업계 한편에서는 최근 상위권 대열에서 뒤처지고 있는 LIG손보를 제외한 빅3 체제로의 재편을 점치기도 한다. ◇온라인 보험 대격전 예고=내년에는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에서도 대격전이 예상된다. 지난해부터 최악의 손해율로 입지가 줄어들었던 온라인 전업사들이 시장탈환을 벼르고 있다. 여기에다 삼성화재와 동부화재를 비롯한 온오프라인 종합손보사들도 여세를 몰아 온라인 점유율 확대전략을 이어갈 방침이다. 온라인 전업사인 악사(AXA)다이렉트는 이미 전열을 정비하고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악사 관계지는 "10월부터 영업 및 마케팅 강화에 나섰다"면서 "업계 최초로 선보인 마일리지 자동차보험을 비롯해 특화된 상품과 서비스로 시장 확대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전업사들은 지난해 손해율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영업이나 마케팅보다 수익관리에 치중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입지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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