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고구마를 캐본 이는 안다. 앞뒤 재지 않고 호미로 땅을 후벼 판들 고구마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노련한 농부는 줄기를 따라 고구마를 캔다. 이동통신 중계기용 부품업체인 에스에이티의 한영진(47) 사장은 스스로를 '고구마를 캐는 농부'에 비유한다. 그도 처음에는 고구마 밭에서 막무가내로 호미질을 했다. 헛수고인듯 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이렇게 흘린 땀의 대가로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있는 시장 트렌드를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 "모든 사업은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따르지만 고구마를 캐는 원리를 터득하고 나면 또 다른 사업을 개척할 수 있어요. 요즘에도 고구마 줄기(시장 트렌드)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실한 고구마(새 사업)를 캐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사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금성사 중앙연구소에 입사, 82년부터 6년간 팩시밀리사업부 등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어 사업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2년간 선배가 차린 회사에서 일해본 그는 91년 수원에 공장자동화 관련 업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첫 시도는 3년만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공장자동화 분야는 대량생산하는 대기업이 적격입니다. 영세업체는 시장진입조차 힘들죠. 시장을 외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착한 게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한 사장은 그 뒤 성암기연을 설립, 개인적 선호도는 떨어지지만 시장전망이 밝은 산업용 제어기 분야에 손을 댔다. 용역작업으로 근근이 회사를 꾸려가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98년 이동통신 중계기 시장이 열리면서 중계기에 들어가는 제어기를 납품하게 된 것. 일정 물량을 꾸준히 납품하게 되면서 그해 첫 흑자(8억원)를 냈다.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상호도 에스에이티로 바꿨다. 이동통신망 투자 확대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에스에이티는 2002년 중순 코스닥 상장심사에서 보류 판정을 받으며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매출품목이 중계기용 제어기밖에 없다는 이유로 상장심사에서 보류 판정을 받게 되자 '사회의 벽'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평가는 내가 아니라 시장이 내린다'는 사실을 절감했죠." 한 사장은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2년간 절치부심, 중계기용 광모듈과 필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두 제품군의 매출비중을 중계기용 제어기 수준으로 끌어올려 지난해 9월 상장심사를 통과, 12월28일 코스닥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을 잘 조화시켜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시장에서 평가가 내려집니다. 시장을 최우선시하면서 이에 맞춰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중계기용 부품업체의 매출은 이동통신기술의 진화속도와 이동통신회사의 투자규모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그래서 한 사장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기존 사업에서 위상을 굳건히 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사업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놀라울 만큼 빠른 기술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에스에이티는 본격적인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앞두고 2005년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기지국 주파수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 모니터링하는 무선통신(RF) 감시장치, 중계기에 오작동이 있는 지 여부를 기지국에 알려주는 CDMA 모듈 사업에 진출했다. ● 에스에이티 경영전략 "광모듈·필터분야 점유율 50% 목표" 지난해 188억원의 매출을 올린 에스에이티의 품목별 매출비중은 이동통신 중계기용 제어기가 50%, 광모듈이 30%, 필터가 20%를 차지한다. 에스에이티는 국내 중계기용 제어기 시장에서 점유율 1위(50%)를 달리고 있다. 중계기용 광모듈과 필터 부문은 후발주자인 탓에 점유율 3~4위(20% 안팎)에 머물고 있지만 올해에는 점유율을 40~50% 선까지 끌어올려 두 제품군에서 120억원의 매출을 올릴 예정이다. 필터는 미국ㆍ일본ㆍ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도 공급할 계획이다. 2005년 뛰어든 무선통신(RF) 감시장치, CDMA 모듈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간다. WCDMA 기지국 주파수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 모니터링하는 RF 감시장치 부문에서 올해 40억원, 중계기에 오작동이 있는 지 여부를 기지국에 알려주는 CDMA 모듈 부문에서 20억~3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한 사장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납품을 시작한 필터와 광모듈 부문이 시장에서 탄탄히 자리잡도록 힘쓰고 신규사업에서도 성과를 내 올해 총 2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