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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예절] 통신문화 24시 현장르뽀
입력1998-11-02 00:00:00
수정
1998.11.02 00:00:00
이동전화 사용자의 행태가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 공해 수위에 다다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통신문화 수준은 몇시일까. 현장취재를 통해 「오늘의 통신문화 24시」를 집중 점검해 본다.수원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오가며 매일 택시·지하철·버스·도보를 모두 이용하는 홍준석기자가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이동전화 사용 백태(百態)를 하루의 일과로 재구성했다.【편집자 註】
출근 시간이면 더욱 붐비는 월요일 아침 수원 북문역.
서울행 직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가운데 젊은 남자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다. 듣고 싶어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 중요한 용건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0여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도착해 승객들이 타기 시작했지만 그의 통화는 계속됐다.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킥킥대다 깔깔거린다. 만원버스 승객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30여분 지나 종착지인 사당역에 도착할 때쯤 참다 못한 중년 신사가 『버스에서는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자』고 젊잖게 타일렀다. 그러나 그는 『내 휴대폰을 내가 사용하는 데 무슨 참견이냐』는 듯 통화를 계속했다.
버스 운전사 이태승씨(43)는 『버스에서 장시간 휴대폰 사용으로 운전이 신경쓰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며 『휴대폰 통화를 두고 승객끼리 종종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찜찜한 마음으로 들어선 사당역의 지하철 4호선안. 대부분의 승객이 만원지하철안에서 이리지리 부대끼며 짜증날 때. 예외없이 「삐리리릭」 휴대폰의 날카로운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든 중년 남자. 『응, 나야. 어제말야 경마장에 갔는데 죽 쒔어. 그 기수XX가 일부러 안 뛴 것 같아. 돈 날리니까 열받겠더라고. 그래서 술 한잔 했지…』
마치 자기집 안방처럼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은 안중에도 없는 듯 듣기에 거북한 소리를 남발해댄다.
중년 남자의 계속되는 고성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쯤 다시 한번 지하철을 흔드는 날카로운 휴대폰의 파열음. 심기가 불편해진 승객의 시선이 발신지로 모아졌다. 하지만 정작 좌석에 앉아 정신없이 자고 있던 휴대폰 주인인 여학생은 모르는 듯 벨소리는 서너번씩 끊기며 「삐리리릭」을 반복했다.
보다못한 옆자리의 할머니가 흔들어 깨우자 그제서야 가방에서 「느긋하게」 휴대폰을 꺼내 든다. 한번 더 신호음을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받는다. 미안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는 박호성씨(43)는 『지하철에서 휴대폰 사용으로 출근 기분이 몹시 상할 때가 많다』며 『나도 휴대폰을 사용하지만 해도 너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박씨가 경험한 가장 큰 희극은 한 차량 안에서 한꺼번에 5명이 통화를 한 경우다. 여기저기서 전화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결국 장내는 웃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속빈 웃음.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서울역 계단. 두 사람이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고성을 지르며 다투고 있다. 핸드폰으로 통화중인 사람이 계단으로 올라가다 급히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혀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핸드폰 소유자는 보상을 요구했고, 상대방은 한눈 판 사람이 누구냐며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다. 보통 때에도 좁은 계단과 갈아타기 위해 밀려드는 승객으로 혼잡한 계단은 두 사람과 구경꾼들로 아예 꽉막혀 버렸다.
서울지하철공사의 한 관계자는 『술취한 승객이 플랫폼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걷다가 선로 아래로 떨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우도 있다』며 『공공장소 휴대폰 사용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목적지인 종각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퇴보하고 있는 통신예절의 현장은 거리에서 너무 쉽게,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많은 차량으로 복잡한 종각역 네거리. 신호대기로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있는 승용차의 여성 운전자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행인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자 신호가 바뀌었다. 1~2초쯤 지났을까. 「빵빵~」 동시다발적인 경적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도로에는 유독 한 차선만 길게 늘어서 있다. 전화중인 운전자의 차선이다. 통화에 정신이 팔려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르고 계속 정지, 도로상태를 정지시켜 버린 것. 우리의 통신문화 시계가 몇시를 가리키는지를 알려 주는 것으로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통신문화는 계속 이어졌다. 광화문 근처 교보문고 앞의 공중전화 부스. 젊은 남녀가 실랑이를 벌인다. 부스 밖의 남자가 기다리다 못해 안을 살펴보니 여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걸고 있으니 화를 낼 수 밖에.
어이없는 모습이다. 화를 가라앉힌 남자는 『이같은 경우가 가끔 있어 오래 기다리다 보면 안의 모습을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면서 『공중전화 부스에 기대어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도 이젠 흔히 보는 꼴불견』이라고 비꼬았다. 공중전화에서 휴대전화 거는 사람의 핑게는 한결같다. 『조용하니까』
퇴근시간에도 우리의 통신문화 시계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퇴근시간 3호선 안국역 지하철안. 대부분 승객의 심신이 지쳐있을 때 난데없는 「삐리리릭」의 울음소리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빨리 받았으면」하는 기대와는 달리 「난나~난나나」「빠바바~바바바바바」등 벨소리, 음악소리등 십여개의 여러 멜로디로 바뀌며 지하철안을 뒤흔든다.
진원지는 웅성웅성대는 대여섯명의 어린 남녀 학생들. 『발신음이 어떤 것이 좋으냐』며 계속 떠들어대고 있다. 청소년의 무분별한 가입이 낳은 불건전한 통신예절의 단면이다.
버스안의 상황도 지하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당역에서 수원행 버스를 타자 간드러진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기야? 나야. 버스안인데 벌써 보고 싶다. 내 생각만 해야돼…』
민망스러워하는 승객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낯뜨거운 이야기는 계속 버스안을 맴돈다.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할 때는 잘 들리지 않는 듯 「뭐, 안들려. 다시 말해봐」를 연발한다.
또 한 켠에선 술취한 승객이 휴대폰을 붙들고 상사를 헐뜯는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다. 『그 놈의 金이사말야. 그래도 되는거야. 내가 계속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피곤한 하루를 단잠으로 풀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산산히 깨지는 순간이다.
거꾸로 가는 통신문화는 택시라고 예외가 아니다. 택시를 타면 한손에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하는 운전기사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밤중이면 더욱 불안해진다. 모범택시도 예외는 아니다. 분명히 잘못된 문화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한 임원은 이 모습을 보고 운전기사와 크게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운전기사들의 휴대폰은 정지상태일 때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일단 승객이 타고, 택시가 움직일 때 핸드폰은 승객의 편의를 위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통신문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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