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다. 그룹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금융업 철수를 결정한 현대그룹(재계 21위)과 그룹 오너의 숙원사업인 반도체사업 매각에 나선 재계 17위 동부그룹 등이 급격한 외형축소의 길에 들어서면서 산업계의 허리가 부실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50위권 대기업집단 가운데 허리 역할을 했던 중간그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라며 "문제는 구조조정에 성공해도 규모와 사업이 크게 축소돼 허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여기에다 추가로 중간그룹으로 들어올 기업들이 없다는 게 산업계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면서 "한번 무너진 허리가 다시 복구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50대 기업집단으로 허리 역할을 했던 기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맞고 있다. 30위권의 웅진에서 시작된 여파가 연쇄적으로 미치면서 50위권 내에서만 법정관리나 구조조정안을 마련해 실행 중인 그룹이 무려 9곳에 이를 정도다. 여기에 총수 구속·수사 등 오너 부재로 어려움에 처한 그룹과 유동성 위기 그룹까지 더하면 15곳 이상이다.
50대 그룹 가운데 외형축소의 길에 들어선 기업은 한두 곳이 아니다. 한때 재계 30위권이던 웅진은 해체되면서 50위권 이하로 추락이 예정돼 있다. 재계 38위인 동양그룹과 13위인 STX그룹도 계열사 매각 등이 예정돼 어느 단계까지 추락할지 감을 잡기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재계 9위인 한진그룹도 해운과 항공업 불황으로 대규모 자산매각을 발표한 상태다. 여기에 동부그룹(재계 17위)과 두산그룹(12위)도 전방위로 현금확보에 나서면서 현재의 어려움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고 한국 내 사업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한국GM(28위)까지 가세하는 등 동시다발적 중간그룹의 외형축소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의 허리 부실화는 새해에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대내외적인 경제환경 악화로 대다수 기업들이 내년 경영목표조차 수립하지 못할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경영목표'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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