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이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로 양도한다는 발표 이후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야심작인 SPA(제조ㆍ유통 일괄화)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제일모직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도전장을 낸 토종 SPA이자 이서현 부사장의 결단 아래 막대한 초기 투자가 이뤄진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특히 패션업계에서는 패션사업 양도 결정이 에잇세컨즈의 중국 진출 등 론칭 당시 계획했던 사업구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SPA 시장은 경기 불황에다 소비 트렌드 변화까지 더해지면서 폭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해외 SPA 브랜드 빅3인 유니클로ㆍ자라ㆍH&M 등을 비롯해 토종 SPA 미쏘ㆍ스파오ㆍ에잇세컨즈ㆍ탑텐 등의 연 매출 규모는 지난해 2조5,000억원을 돌파했으며 올해는 이미 3조원대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일모직도 지난해 2월 에잇세컨즈를 론칭, SPA 급성장 열차에 올라탔으며 첫 해에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는 상당 기간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불구 론칭을 강행한 것은 패션업계의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삼성에버랜드가 패션사업부문을 맡게 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지금으로서는 이서현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의 패션부문만 따로 관리하게 될지도 확실치 않다. 이에 대해 제일모직은 "에잇세컨즈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딱 잘라말하고 있다. 사업부문의 양도인 만큼 국내 사업 확대는 물론 론칭 당시 발표한 2014년 중국 진출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 사업의 경우 제일모직은 이달초 에잇세컨즈 유통을 담당하던 개미플러스유통의 합병을 완료해 내부로 끌어들이는 등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수직계열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도한 초기 투자 부담으로 상당한 손실을 입은 에잇세컨즈를 '제일모직이 어떻게든 손을 볼 것'이라는 예측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제일모직은 '투자를 접지 않고 경영 효율화를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출점도 활발하다. 에잇세컨즈는 론칭 첫 해인 지난해 국내에 8개 매장을 열겠다고 밝힌 후 연말까지 12개 매장을 오픈했으며 올해도 10개를 추가로 열었다.
일각에서는 에잇세컨즈의 삼성에버랜드행이 오히려 브랜드에 힘이 실리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의 기존 사업영역이 건축부동산업부터 식자재유통, 테마파크 골프장 운영 등 의식주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마케팅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점 때문이다. 에잇세컨즈가 계획대로 내년에 중국에 진출한다면 삼성에버랜드가 이랜드처럼 '의식주 라이프스타일 특화 기업'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상장기업인 제일모직에서는 에잇세컨즈 등 패션 브랜드 손실이 분기마다 공개되는 탓에 투자 부담이 컸던 반면 비상장사로 넘어오면서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패션업계에서 유일하게 투자를 지속해 온 제일모직조차도 불황 여파로 패션 브랜드의 손실이 누적돼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가 이뤄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SPA 시장에서 에잇세컨즈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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