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벤처기업 대표 L씨는 기술보증기금에서 연대보증 입보를 면제하는 특례조치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알아보다 허탈해졌다. 기술평가등급은 A 이상이지만 경영자 본인의 지분이 50%에 가까워 해당 요건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관에서 일부 투자를 받았지만 기준인 30%를 넘지 못해 높은 문턱만 실감하고 말았다. L씨는 "창업 초기에 지분구조를 제대로 만드는 곳이 얼마나 되며 30% 지분 이상의 외부투자가 있었다면 왜 돌아다니면서 융자를 받으려 하겠냐"면서 "행정편의적이며 탁상행정을 대표하는 제도"라고 울분을 토했다.
창업활성화를 위해 기술보증기금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법인 경영자의 연대보증 입보 부담을 완화하는 특례제도를 마련했으나 유명무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기술보증기금에 따르면 '우수 벤처기업에 대한 연대보증 운용 특례조치(2006년 1월 시행)' '투자유치 벤처기업에 대한 연대보증 운용 특례조치(2010년 4월)' 등에 따라 연대보증 완전면제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이 혜택을 받은 기업은 현재까지 10곳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역시 지난 2011년부터 창업초기 기업(1년 이내)과 기술우수 기업(SB등급 이상)을 대상으로 0.4~0.6%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내는 대신 연대보증인 입보를 면제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했으나 올 9월 현재까지 특례제도에 따라 정책자금 융자를 받은 기업은 9곳에 그쳤다. 중진공에서 한해 1만개사 이상의 기업들이 정책자금 융자를 받지만 대다수 법인의 경영자들은 연대보증을 택한 것이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한 중소ㆍ창업기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그간 줄곧 실패한 기업인을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연대보증제도를 폐지하고 창업기업가만이라도 연대보증을 면제하는 특례제도를 마련할 것을 주문해왔다. 그러나 정작 기보와 중진공이 마련한 특례제도를 대다수 기업들은 외면하고 있다.
기업들이 연대보증면제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특례제도의 문턱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보는 2006년 1월부터 기술평가등급이 A 이상이고 대표경영자 1인의 지분이 30% 미만이면 가산금리 없이 연대보증인 입보를 면제하는 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여기에 더해 기술평가등급이 A 이상이면서 대표자 지분이 50% 미만인 기업 중 기관투자가로부터 30% 이상의 지분투자를 받았다면 투자유치자금이 보증자금보다 많은 경우에 한해 연대보증인 입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역시 가산금리는 없다. 특례조치로 연대보증인 입보가 면제된 기업들은 투명경영이행 약정에 따라 외부감사 등을 실시해야 하고 위반할 경우 대표자나 실질적인 경영자가 연대보증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문제는 창업기업 대부분이 1인 혹은 소수 지배기업으로 지분분산 요건을 갖추기 어렵고 외부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 융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의 연대보증 특례제도가 '생색내기용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기보나 중진공이 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아는 기업인이 거의 없다"며 "기술등급, 지분분산 요건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기업도 많지 않은데 실효성은 없고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법인 경영자들 대부분이 다중채무자들이라는 점 역시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다중채무자들의 경우 은행이나 여타 금융기관에서 연대보증부 대출을 받았다면 한 기관에서 연대보증이 면제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또 가산금리를 일부 물고 연대보증 입보를 면제받는 제도 역시 창업 초기 기업들이 미리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가산금리 부담을 안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전문가들은 국책금융기관들이 연대보증 입보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특례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각 영업점에 대한 성과평가지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홍재근 박사는 "삼중사중의 복잡한 요건들을 만들어놓고 창업 초기 기업들이 모든 요건을 갖추면 연대보증인 입보를 면제해주겠다는 식의 특례제도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며 "기술평가등급 기준을 더 높이더라도 복잡한 요건을 단순화해 한해 기술평가 최상급 기업 10곳은 연대보증 없이 보증을 해주거나 상징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홍 박사는 또 "정책금융기관들 역시 성과지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추심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영업점의 성적이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추심실적과 연대보증 면제실적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면 어느 영업점 직원이 특례제도를 기업들에 알리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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