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으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형세가 넉넉하면 방심을 하게 되어 있다. 상변을 휘휘 젓고 크게 살아버린 조훈현에게서 만족감에 젖은 실수가 등장한다. 백44가 그것이었다. 이 수로는 한걸 음 더 물러나 가로 지켰어야 했고 그랬더라면 백의 완벽한 승국이었다. 그 한걸음의 차이로 인하여 좌상귀에는 시한폭탄이 남게 되었다. 급소는 나의 자리. 그곳을 흑이 선착하면 백대마의 목숨이 위험하게 된다. 딩웨이는 그것을 즉시 발견했지만 때가 무르익을 때까 지 전혀 내색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조훈현은 그 수를 못보고 있었고…. 흑69와 71은 큰끝내기를 예약하는 테크니컬한 수순들이었다. 그러나 작전적인 가치는 너무도 작았 다. 백이 74로 풍덩 뛰어들어 버리자 흑의 실리부족이 대번에 눈에 보인다. 흑71로는 이렇게 기교 를 부릴 것이 아니라 참고도의 흑1 이하 5로 큼직한 집을 짓고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뭐야. 백이 4귀생에 통어복 아닌가.” 검토실에서는 이렇게 모두 백의 완승을 얘기하고 있었다. 조훈현은 판이 너무도 쉽게 풀린다고 믿 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딩웨이는 시한폭탄에 언제 점화할까를 엿보고 있었으니… .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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