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제수필] 은행장 자리
입력1999-03-08 00:00:00
수정
1999.03.08 00:00:00
은행합병 작업에 참여했던 P씨는 새로 통합 발족되는 은행장 후보에 거명된 인사가 한 50명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한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겠지만 그만큼 그 자리를 노리고 금융계 안팎의 경합이 치열했나 보다.상식적으로 보면 경영이나 신용이 형편없이 땅에 떨어진 공룡기업의 장자리를 맡겠다고 나설 인사가 그렇게 많을까 싶지만 그게 아니다. 하기야 은행이 아무리 부실경영의 상징처럼 되었다 하더라도 돈과 권력이 얽혀 있는 자리이니 톱의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물갈이를 하는 이 춘삼월이야말로<야망의 계절>일 터이다.
어떻든 IMF 쇼크 이후 부실경영의 극치를 드러낸 이 나라 금융계를 재건하겠다고 나서고들 있으니 가상하다. 시장경제의 구조조정이 휘몰아 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큰 물갈이」이니 이번만은 제대로 된 인사였으면 하는 기대도 걸어 본다. 과거의 청와대 낙점이나 낙하산식이 아닌 행장기용의 과정도 그런 기대감을 걸게 한다.
최근 행장에 기용된 모씨의 경우 자신이 후보 리스트에 올라 들러리나 세우는가 했다가 발표 당일에야 자신이 행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장관이나 행장이 되는 당사자들이야 다 그렇게 말하는 법이지만 모양세만은 꽤 갖추느라 애쓴 것 같다. 물론 호남인맥이 어떻고 하는 뒷얘기들이야 무성하지만 「인물 파괴」의 흔적은 역력하다.
과거지사야 이 새시대에 들추어 낼 것이 없겠지만 한때 금융계에는 거물행장시대가 있었다. 경영의 거물이 아니라 그만큼 정치인맥을 탄 인사였다. 다음에 관료행장 시대다. 관치금융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재무부 출신이거나 청와대 로비가 행장 자리를 좌우했다.
다음으로 전문 금융인 시대다. 그러나 결코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뱅커가 되지 못했다. 정치권력이 경제를 올라타고 앉아 있는 틀 속에서 결코<권치금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한보사건이 터지자 은행장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끌려 간 것은 본인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원죄는 시장원리를 죽여버린<권치금융>에 그 원인이 있다. 행장자리의 보증인은 고객도 주주도 아니고 권력 패밀리였던 것이다.
소박한 질문 하나가 떠 오른다. 지금 행장실에는 권력집안들의 전화가 안계신지…. 이 분야의 구조조정도 하고 있는지…. 새 행장들은 관료적인 은행장의 이미지보다 이제는 시대도 세계화의 흐름이니 진정한 의미의 「뱅커들」이 되었으면 싶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