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4개 D램 제조업체의 가격담합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조사와 심의절차를 종결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담합을 자진신고한 업체가 있었고 미국에서 인신구속 등 중징계를 받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 공정위는 26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온 등 4개 D램 제조업체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심의한 결과 조치 없이 심의절차를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심의절차 종료는 사건의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 심의절차를 끝내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무혐의’ 결정과는 구분된다. 공정위는 이들 4개사가 지난 99년 4월부터 2002년 6월까지 IBM과 HP 등 미국 내 6개 대형 수요업체에 공급하는 D램 고정거래 가격을 담합한 행위가 국내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해왔다. 공정위는 그러나 “확보한 증거자료만으로는 미국의 6개 수요업체에 대한 이들 업체의 행위가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포함했는지 여부와 한국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명백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비록 이들 업체 가운데 미국 내 조사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한국 공정위에도 자진신고해 담합혐의는 인정되지만 그 담합행위가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입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이번 건을 5년 가까이 조사해왔으면서도 국내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이들 D램 업체에서 반도체 칩을 공급 받은 IBM이나 HPㆍ델 등의 PC가 국내 시장에서도 판매되고 있어 공정위 조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또 위원회에 보고된 심사보고서에는 담합 인정과 함께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병배 부위원장은 “미국 내 혐의사실 인정과 일부 자진신고자의 신고가 있었지만 이를 담합 혐의의 근거로 인정하기에는 불충분했고 다른 업체들의 반박 증거가 있어 혐의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D램 가격 담합 건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국에 이어 유럽연합(EU) 경쟁당국도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다른 나라도 한국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어 이후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담합 결정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공정위의 결정이 나온 뒤 삼성전자는 “공정위가 면밀하게 조사한 이번 심의 결과를 존중한다. 앞으로도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정도경영을 실천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하이닉스반도체는 “공정위의 심의 결과를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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