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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지역주의 혁파
입력1999-01-24 00:00:00
수정
1999.01.24 00:00:00
대학을 다닐 때의 일이다. 수도 서울권에서도 호남출신들이 여러 분야에서 유난히 부당한 차별적 예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들어오긴 했지만, 참으로 예상치도 않았던 상황이 그러한 사실을 실감케했다.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기 위해 방을 구하러 다니던 터에, 어느 날 어렵사리 방을 얻게 되었다는 친구의 안내를 받아 전통적인 서울 기와집을 들어서서 방을 내어준 데 대한 고마운 심경을 가다듬어 주인 아주머니 앞에 섰다.「고향이 충청도라 했지요?」 예사롭게 던져지는 질문에 나는 움찔했다. 친구가 고향을 충청도라 속이고 방을 얻기로 한 것임을 직감했다. 고향을 속인 친구의 비굴함에 대한 배신감과 고향을 속여야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울분 같은 것들이 뒤엉켜 왔다.
「아니오. 고향이 전라도입니다.」 표현상으로는 또박또박 정돈된 것이였지만, 가슴속에서는 처절하리만치 억울한 심정으로 나는 악을 쓰고 있었다. 호남출신이라는 것이 결코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비장한 항변에 설득되었던지 집주인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승낙을 했고, 1년 후 그 집을 나올 때에는 못내 서운해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해소와 지역격차 타파는 정치인에게 주어진 뺄 수 없는 과업이다. 특히 남북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모색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터인지라 영·호남으로 대칭되는 동서 화합이 하루라도 속히 앞당겨져야 하는 절실함이 있다.
오늘날의 지역차별이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로부터 비롯되었다면, 1,000년을 넘는 망국의 병폐를 안고 온 셈이다. 조선조에 접어들어 기호 중심세력인 훈구파와 영남 중심세력인 사림파가 암묵적으로 호남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부추킴으로써 호남인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켰다 하더라도, 그 뿌리깊은 병적 관념의 의식유산을 재현 심화시켰던 71년 영·호남 대결의 대통령선거에서의 박정희씨를 비롯한, 그 이후의 지역감정을 악용한 정치인들의 죄과는 두고 두고 씻기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천착의 굴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혁파하고 시정하는 일이다.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의 개혁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터에, 의식개혁이야 말로 가장 우선되어야할 기초적 단초이어야 한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겨냥한 유럽은 마침내 유러화를 탄생시켰다. 엘빈토플러가 세계는 정보화라는 거대한 물결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고, 이 변혁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만이 21세기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세계속에 우리의 자존심을 우뚝 세우기 위해서도 지역주의 멍에의 사슬을 끊어야 할 때이다. 우리는 해 낼 수 있는 민족적 강점을 발휘해 왔다.
금융환란의 긴 터널속 임에도, 영국의 신용평가사 피치 IBCA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했다는 사실도 위기에 강한 우리 국민의 저력의 발현에서 연유한 것이다. 왜곡 굴절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리는 의식개혁이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동서화합을 위해, 영남인은 과거에 우대받아 왔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평균감각을 찾고, 호남인은 정권교체를 통한 우월적 수혜 기대의식을 떨쳐 버려야 한다. 물론 그 이정표는 정치권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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