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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탄생 100년] 시장? 없으면 만들면 된다

'정주영 철학' 닮은꼴, 듀폰·록펠러·IBM

경쟁사 발전·수요도 견인

"자동차 산업은 전략적 실험에 가까웠습지다". 경인과 경부·영동고속도로가 속속 개통되며 자동차 산업의 시동이 걸리던 1970년대 초반 산업정책을 주도했던 당시 정부 고위당국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1970년대 초반 기술력과 경제수준으로 자동차 산업 육성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관련부품·기계산업의 동반상승 효과와 소비진작까지 고려했습니다. 사실상 전략적 실험에 가까웠지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발점은 1955년. 미군이 쓰던 휘발유통을 두드려 펴서 지프 형태로 차를 만들어냈다. 이름도 '시발'. 연산 400대로 시작해 2,000대까지 늘었으나 차다운 차를 만든 것은 현대자동차가 포드의 기술로 '뉴코티나'를 생산한 1971년부터다. 이후 한국 자동차 시장은 유럽·미국·일본 기업들과 제휴한 다양한 브랜드가 출시되는 '테스트베드(test bed)'가 됐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신흥국 시장 진출 위험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합작사업(joint venture strategy)이었고 한국 기업은 기술 학습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계형성에 나섰다.

기술도입 위주의 산업구조 아래서 정부는 1973년 중화학공업 정책 추진을 위해 자동차공업 국산화 방침을 발표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팀은 선진국형 산업의 대표적 사례인 자동차 분야의 내수형성과 수출 가능성 확보를 위해 국산화를 서둘렀다. 그러나 이를 맡을 회사가 없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여긴 고유모델 개발의 총대는 현대가 멨다. 현대자동차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상황에도 고군분투했고 마침내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와 포니 쿠페 콘셉트카를 출시하면서 국산화와 고유 모델의 길을 내달렸다.

1975년 12월 포니가 처음으로 양산됐고 이듬해인 1976년에만도 1만726대가 판매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현대차는 처음부터 내수와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판매 첫해인 1976년 1월 에콰도르 수출을 시작으로 1977년 포니 왜건, 포터 트럭, HD-1000 미니버스를 해외에 팔았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 혁신유형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는 자사뿐 아니라 시장 질서를 정의함으로써 경쟁기업들의 성장 가능성까지 제고해 '시장창조형 혁신'을 일궈낸 조직에 해당한다.



비슷한 경영사례를 1900년대 미국 산업화 초기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했던 듀폰·록펠러·IBM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00년대 미국의 혁신적 기업인들은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자세로 단순 경쟁이 아닌 산업 전체의 성장이 가능한 공간을 창조했다. 현대차의 국산화 전략은 바로 이랬다. 경쟁 브랜드들의 발전과 함께 시장 수요를 견인하는 효과를 낳았다. 기아차·신진자동차 등이 각각 독자생산 또는 해외 브랜드와의 제휴생산으로 시장 점유율을 넓혀나갔다. 현대차의 혁신 견인력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온 셈이다.

기획취재팀=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팀장), 김영필·나윤석(산업부)·김나영(편집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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