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10위권을 넘나드는 대한민국의 씀씀이는 풍족하다. 좁은 국토에 5,000만명의 인구가 밀집돼 있고 대기오염 수준은 최악이지만 운전자 10명 가운데 3명은 대형차를 타고 다닌다. ‘폼 안 나는’ 경ㆍ소형차 운전자는 10명에 한명꼴에 불과하다. 먹거리 상당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음식물은 한끼 식사량인 270g에 달한다. 겨울에는 반팔, 여름에는 긴팔을 입고 다니느라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선진국 평균치의 10배까지 치솟았다. 당장 편하고 잘 사는 데 급급한 대한민국 환경 마인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낙후된 환경인식은 성장동력 상실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할 수 있는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후진국 못 벗어난 ‘환경성적표’=국내외에서 매겨진 우리나라의 환경 성적은 세계 13위의 ‘경제우등생’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다. 지난 2005년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우리나라의 환경지속성지수(ESI)는 전세계 146위 가운데 122위. 선진국 대열에 오르기 위해 환경을 희생시키면서 경제개발에 비지땀을 흘린 결과, 이 대로라면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울 지경으로 발전의 밑천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SI란 지금과 같은 환경ㆍ사회ㆍ경제조건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지를 수치화해서 비교한 것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올 초 발표한 지속발전가능지표도 지난 5년간 경제ㆍ사회 부문에서의 두드러진 개선추세와는 달리 환경부문은 개선된 지표 못지않게 악화된 지표가 많았다. 환경자원 훼손이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추진력과 잠재능력을 지닌 우리나라가 환경문제에 관한 한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이유로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부족과 단기 성과주의를 꼽는다. 눈앞의 위협요인이나 당장 주머니를 채워주는 경제적인 성과가 없다는 특성상, 환경사업은 정부의 예산집행에서도 밀리기 십상이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국가장기생태연구사업을 총괄하는 최재천 이화여자대학 에코과학부 교수는 “당초 계획대로라면 5차년도인 올해 예산이 50억~60억원은 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10억원 정도 밖에 배정받지 못했다”며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 지속성장은 환경에 달렸다=하지만 더 이상은 개발을 이유로 환경을 외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에서 뒷짐을 지고 있다가는 21세기 새로운 국제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를 쓰지 않으면 GDP의 20%에 해당하는 경제적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는 영국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 경이 지난 2006년 발표한 지구온난화 보고서대로라면 앞으로 환경후진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은 물론이고 경제후진국으로의 도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계섭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환경악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개발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개발의 감가상각이 끝나 가고 있어 새 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환경보존은 배부른 사람들의 논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앞으로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서 선진각국의 정상들이 경쟁적으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공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세기에 굴뚝을 많이 세운 나라가 세계의 패러다임을 주도했다면 21세기에는 굴뚝이 적은 나라가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공통된 인식이 국제사회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미래는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김정인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관한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환경 분야 주제발표에서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20~30년간 세계시장을 이끌 산업으로 에너지와 환경산업을 필수요소로 보고 있지만 국내 환경산업체의 국제경쟁력은 미흡하고 환경 관련 유망기술도 선진국의 50~60%에 머무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백년대계 세워야 할 때=최근 LG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전세계 온실가스 시장은 1,5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은 개발도상국 지위로 탄소감축 의무이행에서 비껴 선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공기’를 사들이는 데 수십조원의 국부를 쏟아 부어야 할 날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의 일이라 와 닿지 않는다면 환경파괴에 따른 피해를 돌이켜보자. 태안반도의 기름띠 유출에 따른 생태계 파괴는 수많은 국민들의 생계를 무너뜨리고 완전복구까지 수십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60조원의 경제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쓰촨성의 지진에 대해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환경 재앙설을 제기하고 있다. 환경보존은 국가의 ‘품격’을 살리는 겉치레를 넘어서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존립’의 필수요소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기후변화 대응의 틀을 형성해온 영국이나 유럽 각국, 일본 등 환경강국에 한참 뒤처져 이제 막 걸음을 뗀 우리나라의 앞길은 멀다. 최재천 교수는 “경제ㆍ외교안보 등을 망라하게 될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인재가 없다는 것”이라며 “당장 돈이 벌리지 않는다고 외면하는 사이 국제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는데 국내에는 전문가는 물론 전문가를 양성할 교육기관도 없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도 “환경 대응은 장기적인 시스템과 어려서부터의 교육이 필요한 문제”라며 “장기적인 투자와 전문가 양성 없이 무조건 검증할 수 없는 외국기술을 받아들이다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환경보호가 훗날에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기획=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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