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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연금의 성공조건
입력2003-01-15 00:00:00
수정
2003.01.15 00:00:00
새 정부가 근로자들의 복지와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제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업연금 도입작업도 서서히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가 기업연금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현행 퇴직금제도가 근로자들의 노후생활보장 장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5명 이상의 기업들은 급여의 8.3%를 퇴직충당금으로 적립하게 돼 있지만 이를 이행하는 기업은 40%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자금사정이 나쁜 기업들은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외환위기가 닥쳤던 지난 98년의 경우 기업의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퇴직자의 40%가 퇴직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논의되고 있는 것이 기업연금이다. 기업연금은 퇴직충당금을 회사 밖의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근로자가 퇴직한 뒤 그 기금의 운용수익을 보태 연금으로 지급받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2001년 6월 이후 제도 도입을 논의해왔지만 연금형태와 적용대상 등을 둘러싸고 노사간의 의견대립으로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연금지급액이 확실히 보장되는 확정급부형을 주장하고 있고 경영계는 매달 일정액을 적립한 뒤 운영에 따른 손실을 근로자가 지는 확정각출형을 선호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가 근로자의 노후대책보다는 증시부양의 관점에서 기업연금 도입을 추진하면서 사태는 더 꼬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재경부는 주식시장이 침체를 면하지 못하자 주무부서인 노동부를 제쳐두고 기업연금제도를 조기 도입, 증시를 안정시키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증시대책에 급급한 나머지 근로자의 노후보장이라는 기업연금의 핵심은 뒷전으로 밀려버린 느낌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점점 더 꼬이고 있다.
금융상품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근로자들이 주식상품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지난해 하니웰과 포드 등 미국의 주요 기업연금 펀드들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시장이 침체되면서 수억달러씩의 손실을 본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퇴직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근로자들의 가장 큰 노후보장 장치다. 따라서 퇴직금의 대체 제도로 추진되고 있는 기업연금의 운용은 수익성보다는 안정 중점을 둬야 한다.
당국은 더 이상 근로자들의 노후보장 장치를 담보로 주식시장을 살리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오철수<사회부 차장>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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