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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실패… 고용감소… ‘터전’ 흔들린다(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여성은 도시-유흥업소로 남성은 한국으로/기업도 설비·기술낙후 현지은서 대출 기피/동포회사 투자·비자편의등 고국지원 절실『과거에는 장군과 열사들이 조선족을 보호하고 그 위상을 높여줬지만 개혁·개방의 시대에는 조선족 기업만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족) 자체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중국 요녕성 심양시의 한 조선족 지도층 인사는 『한국정부와 대기업들이 유망한 조선족 기업가들을 밀어줘 조선족중에서도 굵직한 사업가들이 많이 나와야 조선족 사회가 쑥대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족 기업인들도 『조선족 발전의 뿌리가 되는 기업에 물을 줘야 나무가 잘 클 것』이라면서 『한국정부가 조선족과 손잡는 한국기업에 대한 우대정책을 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알토란같은 조선족 기업들이 도처에서 일어나 고용을 확대해가야 조선족의 퇴행과 유랑민족화를 막고 자긍심과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말썽 많은 한국내 조선족 불법체류 문제도 조선족 기업이 활성화되면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족이 이같은 위기상황에 내몰리게 된 배경에 대해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개방 초기에는 사상적으로 부담이 없는 조선족 농민들이 개인사업에 뛰어들어 소규모 주물공장 등을 운영, 국영기업에 납품하는등 재미를 보았지요. 하지만 90년대 들어 자본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한 중국 지식인들이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들면서 1세대 개인기업가들은 급속히 물갈이 됐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도 신용·사업성 평가개념을 도입했다. 1세대 조선족 사업가들은 출신·인맥·학맥등 중국에서 중시되는 「관계」가 변변치 않고 기술·설비가 낙후한 처지라 전처럼 대출을 받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1세대 사업가들의 쇠락과 함께 등장한 2세대(30∼40대)는 제조업보다 무역, 유통업 진출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계획과 부동산경기 침체, 중국정부의 긴축정책 등이 겹쳐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요녕성 조선족기업가협회 김희복회장은 『이대로 가면 조선족은 기도 못 편채 풀처럼 살다 스러지고 말 것』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다른 관계자는 『조선족 여성들이 도시로, 한국으로 몰려가고 남자 엘리트들은 한국기업 등이 쏙 빼가 조선족 사회가 사막처럼 변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깊은 한숨을 토했다. 심양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조선족들은 『심양시에만 6천∼7천여명의 조선족 여성들이 노래방 룸살롱등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돈도 좋지만 앞날이 걱정』이라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족 기업인들은 또 한국정부와 언론, 사회단체 등이 사기피해를 당한 조선족을 돕는 운동은 펴면서도 정작 조선족 발전의 뿌리가 되는 동포기업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며 「잘못된 처방」을 아쉬워 했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조선족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하루빨리 기술연수, 비자발급상의 편의를 제공해줄 것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들은 한국정부가 한국기업과 거래하는 자신들을 「불법체류 대상자」와 동일시하는데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한국상품을 수입하거나 한국업체에 납품, 한국의 국익에 도움을 주는데다 불법체류할 리가 없는데도 피고인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사업상 어쩔 수 없어 가긴 가지만 자존심이 뭉개지는 사례가 많아 한국행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기술 연수·이전, 합자 등의 파트너를 동남아국가에서 물색하는 조선족 기업인도 있다. 한 기업인은 『비자 한번 받으려면 3주에서 한달을 허비해야 하는 것은 보통이고 영사부 앞에서의 줄서기 전쟁도 만만치 않다』면서 한국정부의 무성의를 성토했다. 한편 한국 기업인들은 조선족 근로자들이 기대수준은 높은 반면 참을성과 열의가 부족하고 한국내 협력업체에 기술·산업연수를 내보내면 잠적하는 경우가 잦아 채용·파견을 꺼리게 된다고 반박한다. 조선족들도 이같은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글로 제작되는 흑룡강신문이 지난달 내보낸 시리즈 「산동진출 한국업체에서의 조선족 이미지 점검」을 살펴보면 저간의 사정을 알수 있다. 이 신문은 「외면당하는 조선족 통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업체나 개인사업가들이 앞다퉈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자질이 낮은 조선족 인력들을 마구 통역으로 채용했고, 그 결과 거래를 그르치거나 일처리가 시원찮아 한국기업이 조선족보다 한국어를 전공한 한족을 더 선호하는 경향조차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중 「끈기없는 조선족」편에서는 조선족 노동자들이 한족에 비해 회사를 자주 옮겨다니고 기대수준만 높아 한국기업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또 「눈먼 직업교육」편에서는 상당수 조선족 직업학교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형태(노동집약→자본·기술집약적 업종) 변화에 둔감해 수요에 맞는 훈련을 하지 못하는데다 무허가 직업소개소가 증가, 불신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의 조선족 불신분위기에 대해 조선족과 일부 한국인들은 『이해는 가지만 한국 기업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말이 통한다고 오랫동안 사회주의적 정서에 익숙해져 있는 조선족 근로자에게 한국인과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과 일처리 능력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또 조선어로 수업받는 조선족학교 학생들이 한족학교 학생보다 중국어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학교 재정형편상 영어과목을 설치하기가 쉽지 않아 영어교육을 받는 한족보다 경쟁력이 뒤지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길림성 장춘에서 스웨터를 생산하는 한상천동방제의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인들중 말이 통한다고 한족 근로자를 멀리한 채 조선족만 편애를 하거나 초창기 사업이 좀 된다고 딴전을 피우다 공장 문을 닫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장춘=임웅재 기자> ◎연변자치주 중심 200만명 거주/80년대이후 개인장사 진출 봇물/활동영역도 음식점·시장에서 장사등 탈피/호텔경영·택시업·식료품 가공업등 다양화 중국에는 우리나라의 재외동포중 가장 많은 약 2백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재중동포인 조선족 인구는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 11번째로 많은 규모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1백70만명에 달했던 조선인 인구는 본국 귀환으로 49년 1백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자체적인 출생과 사망에 의해 약 2백만명으로 늘어났지만 60,70년대 문화혁명과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에 따라 인구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조선족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동북3성, 특히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는 길림성에 61.5%가 밀집해 있다. 길림성의 조선족은 1백18만명(연변자치주 85만명 포함)에 달하며 흑룡강성 43만명, 요녕성 20만명, 내몽고자치주 2만명, 기타지역에 17만명(북경 3만명 포함)이 거주중이다. 동북3성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는 숫적으로는 아직도 미미하나 80년대 중반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조선족 인구는 60년대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조차 과반수를 밑돌고 있다. 지난 53년 60.2%에 달했던 연변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비중은 최근 39%까지 떨어져 자치주 존립에 대한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조선족의 타지역 유출보다는 중국정부의 대규모 한족 이주정책에 따른 것이다. 한편 조선족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수교이후 북경, 천진, 상해, 청도, 대련 등 해안지구로 급속히 이주하고 있다. 특히 90년대이후 주민등록제도와 유사한 호구에 관한 통제가 약화되면서 농촌 젊은이들의 도시로의 이동은 급격히 증가추세다. 91년경 5천명에 불과하던 북경거주 동포수는 최근 3만여명으로 증가했으며 2000년경에는 10만여명이 모여들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최근 경제활동 가운데 특이할 점은 개인사업 종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 연변의 경우 79년까지만 해도 한족을 포함한 개인상공업 종사자는 5백여세대 7백명 수준에 불과하던 것이 90년대 초반 3만7천세대, 5만2천여명으로 급증했다. 요녕성에서도 80년대초이후 10년간 5천여개의 조선족 개인공상호가 생겼다. 이는 관직과 농사를 중시하고 상공업을 천시하던 조선족의 직업관이 공직보다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개인사업 쪽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음식점 경영과 시장에서의 상업활동에 집중된 개인사업 영역도 90년대들어 호텔경영, 가라오케, 미용원, 택시업, 전기용품 수리점, 식료품 가공업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제조업쪽은 여전히 미약한 형편이다. 법인 형태의 조선족 기업(사영기업)은 80년대 중반이후 주로 개인사업의 확장 형식으로 시작됐다. 따라서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영기업은 조선족이 모여사는 연변 등지보다 한국, 황해와의 거리가 가깝고 공업이 발달한 요녕성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90년대초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조선족 사영기업은 요녕성에 2천여개가 활동중인 반면 연변은 4백개를 밑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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