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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일대 전환기… 「제2도약」 체질개선 박차
입력1997-04-11 00:00:00
수정
1997.04.11 00:00:00
한상복 기자
◎막대한 재고·생산비 상승으로 업계 전체 “시름”/제품 고부가화·마구잡이 설비투자 탈피 시급/삼미·한보인수 업체따라 지각변동한보철강과 삼미특수강의 부도를 계기로 국내 철강산업이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
한보와 삼미의 부도는 이들 회사의 침몰만이 아니라 국내 철강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업계 전반에 큰 파장과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보철강은 법정관리 이후 올해안에 제3자에 인수될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기업이 이 회사를 사들이냐에 따라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밑그림이 다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보철강이 「국내 최대의 민간제철회사」를 꿈꾸어온 매머드급 기업이기 때문이다.
삼미도 마찬가지다. 「특수강산업의 대명사」로 군림해 온 이 회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 특수강산업의 판도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가 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일부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구체적인 정책방향이 마련돼 무게가 실릴 경우 한계기업의 퇴출과 경쟁력있는 기업의 신규진입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앞으로 철강업종 주력의 경쟁력있는 기업이나 탄탄한 사업구도를 가지고 있는 재벌 계열사를 중심으로 국내 철강산업의 「헤쳐모여」가 가속화할 가능성도 크다.
결국 한보철강과 삼미특수강 부도는 우리 철강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부문의 판을 새로 짜게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철강산업은 국가경제의 원동력이다. 작은 바늘에서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안쓰이는 곳이 없다. 반도체에 밀려 퇴색하긴 했지만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철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근대에 와서 가장 먼저 철강공업이 발달했던 영국이 산업혁명이후 1백여년간 세계사를 주도했고 19세기말 독일과 20세기의 미국도 그러했다. 또 최근 몇십년간 가전제품과 자동차, 기계류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일본의 힘도 따지고 보면 철강산업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3천8백90만톤의 생산규모로 세계 6위.」
지난해 우리 철강업계가 올린 성적표다. 양적으로 보면 이미 세계적인 철강 강대국의 위치에 와 있다. 더구나 포항제철이 지난 73년 일관제철소를 세운 이래 불과 4반세기만에 올린 성과란 점에서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형만큼 내실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철강업계 전반에 걸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어떤 부분은 곪을 대로 곪아 터져버렸다. 한보와 삼미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날로 더해가는 생산비의 상승으로 업계 전체가 큰 시름을 앓고 있다. 통계를 보면 지난 10여년간 국내 철강업계의 생산비는 거의 2배 가량 올랐다는 분석이다. 이러다보니 대외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국제시장에서 값싼 러시아산이나 중국산에 밀려 설자리를 잃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국내 업체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싼값에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
냉연강판의 경우 지난해 중반만 해도 수출가격이 톤당 5백10달러 선이었으나 하반기에는 4백90달러로 20달러나 떨어졌다.
철강업계가 지난해부터 겪어온 어려움은 자승자박이라는게 기업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80년대 후반이후 철강경기가 호황을 누리자 구체적인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투자를 서둘렀던 것.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반대로 철강경기는 지난 89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신도시 2백만호 건설로 철근경기가 좋았을 때 너도나도 철근사업에 뛰어들었고, 경쟁기업이 신증설을 추진하면 뒤질세라 더욱 큰 규모로 공장을 확충하다보니 필연적으로 공급과잉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는 물론 철강업종 뿐 아니라 국내 기업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기도 하다.
철강업계는 지난해 막대한 재고부담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중재고가 1백만톤에 달하면서 생산업체들에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었던 철근을 비롯해 냉연강판(96년 10월 기준 11만8천톤)과 형강(12만7천톤), 강관(30만톤) 등 주요품목 모두가 공급이 넘쳤다. 기업들은 제품값이 바닥을 치는 와중에도 공장을 풀가동, 자금전 양상의 「버티기 전쟁」을 치러왔다.
한보와 삼미의 부도파문도 이같은 고질적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들 업체는 잘못된 수요예측과 능력을 벗어난 무리한 투자로 화를 자초한 대표적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철강업계 사람들은 『올 한해가 위기임에는 틀림없지만 희망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일부 품목에 대해 생산량 조절에 들어간데다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상당히 호전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철강경기는 지난 3월부터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다. 열연강판을 비롯한 주요제품의 가격도 수요증가를 바탕으로 오름세를 타고 있다. 연합철강과 동부제강이 지난달초 냉연강판과 용융도아연강판의 값을 각각 3.2%, 3%씩 인상한데 이어 포철도 지난 6일부터 열연강판과 냉연강판 등 주요제품의 가격을 3.1∼4.5% 가량 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가격인상이 한보부도 이후 가수요 발생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경기의 본격적인 상승무드 때문인지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철강산업이 구조전환기를 맞이해 고부가가치 제품위주로의 라인업과 합리화를 통한 원가절감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철강산업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각종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라며 『기업들도 과학적인 수요예측을 통한 합리적 설비투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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