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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모(39)씨는 지난해에 금값이 오르자 자녀의 금반지 등을 팔았다. 매입한 업자는 정식 금은방이 아닌 아파트단지 등을 돌며 가판영업을 하는 떴다방식 금 수집업자였다. 시세보다 조금 더 값을 쳐준다는 업자의 입담에 비결을 물어보니 "세금을 안 내기 때문에 이윤이 더 생긴다"고 귀띔했다.
#지난 2007년 2월 인천세관은 대규모 금괴밀수를 적발했다. 적발물량은 1,460㎏. 당시 시가로 치면 327억원에 달했다. 국내 연간 금 유통량의 1%에 육박하는 물량이 단 한번의 밀수로 반입될 뻔한 것이다. 과세당국은 국제 금값 상승 이후 밀수가 한층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하시장에서 음성거래되는 금이 어떻게 확보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금 거래규모는 연간 최대 150톤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60~70%가 이처럼 세금을 피해 몰래 유통되는 이른 바 '뒷금'이다. 뒤꽁무니로 몰래 거래된다고 해 붙여진 속칭이다.
뒷금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거래과정에서 전문꾼들이 세금을 떼어먹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멍이 난 세금은 고스란히 선량한 유통업자나 일반 국민이 부담한다.
밀수금은 세관 몰래 반입되므로 당연히 관세를 피한다. 밀수업자는 이를 도매업자에게 넘기는데 과세당국에 신고되지 않는 밀거래이므로 도매업자는 당연히 부가세를 내지 않는다. 밀수금은 이렇게 몇 차례 더 도매업자들의 손을 거쳐 소매업자에게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부가세 탈루가 일어난다. 일부 탈세 도매업자가 정상적으로 거래하는 도매업자에게 밀수금을 정상적인 금인 것처럼 속여 넘기면서 10%의 부가세를 금 판매대금과 함께 받은 뒤 폐업을 하고 잠적하는 것이다. 이런 폐업 업자를 '폭탄업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부 악덕 업자는 배짱 좋게 과세당국으로부터 내지도 않은 부가가치세를 부정 환급 받기도 한다. 수출용 금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돌려주는데 이를 악용해 수출용 금으로 유통한 것처럼 속여 세금을 환급 받고 실제로는 국내로 빼돌리는 수법이다.
이렇게 세금을 이중 삼중으로 떼어먹는 규모는 아예 거래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정확히 추정하기 어렵다. 단순히 일부 통계 등을 바탕으로 부가세가 3,000억원대까지 새고 있다고 예상할 뿐인데 법인세ㆍ개별소비세ㆍ관세 등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탈세규모는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거래소(KRX)가 금거래소를 개설하고 기획재정부가 금거래소 거래물량에 대해 세금감면 혜택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뒷금의 유통을 줄이려면 금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투명하게 추적할 공개시장을 조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범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관세청은 밀수업자들이 금을 몰래 반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금 구입비용의 5~6%선이라고 분석했는데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밀수금은 면세금보다 9% 정도 더 저렴해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정부 용역보고서를 보면 국제 금 시세를 100%로 볼 때 밀수금 시세는 밀수비용을 포함해 104%인 반면 정상적으로 수입돼 유통되는 금 시세는 113%에 달한다. 이렇게 밀수금 등이 더 싸다 보니 업자들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뒷금을 사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귀금속업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세금감면을 통해 정상 유통되는 금과 뒷금의 시세차를 줄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금거래소 설립의 또 다른 걸림돌은 주무부처를 어디로 할 것이냐인데 KRX가 금거래소를 설립하게 되면 주무부처는 금융위원회가 된다. 그런데 금융위는 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게 관가 안팎의 전언이다. 혹시나 금거래소에서 거래사고가 발생하거나 실적이 부진하면 책임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일부 부처 간 협조에 이견이 발생하자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 국회에 출석해 "부처 간 이견이 있는데 (조율되도록) 조금 더 독려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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