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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정부 잇단 임금인상 압박에 재계 볼멘소리

"기업이 경기부양 수단인가"

환류세제·배당 이어 3차 압박… "반기업 정서만 부추겨" 불만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적정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 경제부총리로서는 "기업이 나라 경제와 경기부양을 위해 다시 나서달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한 요청이었지만 기업들은 지난해 기업 경영전략까지 흔들었던 '기업소득환류세제'와 배당확대 요구에 이은 '3차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부탁(?)'과 달리 임금인상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당장 최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5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해 임금인상률 권고치를 1.6%로 내놓았다. 경제단체라고 하나 경제수장의 발언 직후 이처럼 반대 목소리를 공공연하게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기업들의 불만이 쌓여 있다는 뜻이다.

'기업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는 정부'에 대한 재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9일 "투자와 배당 수준 결정에 이어 임금처럼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에 대해 단순히 경기부양의 필요성만을 보고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의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도 "정부가 마치 기업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경제가 나쁘다는 식으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물론 정부는 사용 가능한 모든 카드를 다 쓰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최 경제부총리의 인식처럼 9일에는 과거 이헌재 경제부총리 시절에 내놓았던 이른바 '한국판 뉴딜'로 불리는 민자투자 강화방안까지 제시했다. 앞서 정부는 재정확대와 '규제 기요틴'을 통한 투자촉진책 등을 줄줄이 꺼냈다.

그럼에도 효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경련은 최근 올 경제성장률이 3.4% 이하가 될 것이며 2%대 후반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마지막 수단으로 다시 한번 기업에 손을 내밀고 있다. 가계부채가 1,1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내수를 진작하려면 소득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할 만한 데가 없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야 하는데 정부는 "쓰고 보라"고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ㆍ4분기 국내 주요 기업들의 매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3.2%를 기록했다. 원화 강세로 석유ㆍ화학업종이 크게 부진했기 때문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 같은 정유사는 지난해 적자를 냈고 조선과 건설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사정이 낫다는 삼성만 해도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SDS·삼성전기 같은 주요 계열사들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비연봉제 직원의 호봉상승분과 수당인상 등을 감안한 실질 상승률은 4.2%에 달해 추가 여력이 작은 편이다.

경영상황이 열악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은 임금을 올리면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조바심을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도 현 경제상황을 심각하게 보고는 있지만 업체들만 몰아친다고 내수가 살아나고 경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인상과 최저임금 상향은 일자리를 줄이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생각이다. 최저임금 부분만 해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해 결코 낮지 않다는 게 재계 판단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임금을 높여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실제 상당 수 기업들은 임금이나 최저임금을 올릴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아파트 경비원에 최저임금을 적용한 뒤에 대규모 해고사태가 벌어졌던 것처럼 억지로 임금을 올리게 되면 경쟁력은 떨어지고 되레 일자리를 줄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거꾸로 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에게 과감한 당근책을 줘 경영 의욕을 키워주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소비를 촉진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책은 그 반대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 수도권 규제 완화처럼 기업들이 오랜 세월 요구해온 대형 규제는 풀어준다는 선언적 발언만 나올 뿐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런 순리를 거스른 채 눈 앞의 성과를 내기 위해 기업만 압박해서는 오히려 서민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기업들은 말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보다 근원적이고 확고한 비전을 보여줘야 기업들이 따라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인상이나 투자 확대를 했을 때 국내 경기가 살아나 다시 매출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규제완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원격진료를 포함한 의료와 교육시장 같은 서비스업 분야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나 임금인상 같은 정책으로 경기가 살아나 매출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으면 왜 못하겠느냐"며 "무턱대고 일단 하고 보라는 식으로는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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