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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국회 국정연설 준비과정 리포트

4월 2일 오전 10시.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 국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대통령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파병과 국익, 현실과 명분, 경제와 개혁 등등.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대통령은 15년 전 처음으로 대정부질문을 하기 위해 발언대로 향하던, 혈기 넘치는 한 초선의원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시 노무현 의원의 연설은 파격적이었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타성에 젖은 관료사회와 정치권에 보내는 질타의 목소리였다. 당시만 해도 국회의사당에서 그런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의 연설이 파격적으로 비쳤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15년 후, 노무현 의원은 대통령이 되어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유달리 인연이 없었던 국회의사당. 금 배지를 달기 위해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안달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정치를 함에 있어 원내와 원외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낙선의 고통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이끄는 과정의 하나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발언대에 섰지만, 대통령이 서있는 정치적 환경은 15년 전의 그때와 크게 다름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의 정치적 우군은 많아 보이지 않고, 그가 풀어가야 할 숙제 또한 산적하다. 이라크 전쟁과 파병, 북핵, 어려운 경제, 그리고 서둘러야 할 개혁의 과제들……. 그러나 국회는 여소야대의 구조이고 파병 문제에서 보듯이 여당의원들조차도 의견이 엇갈린다. 게다가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노사모나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파병 반대를 외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사면초가의 상황 탓이었을까? 3월 20일쯤 국정연설이 결정된 순간부터 대통령은 유달리 연설 준비에 신경을 썼다. 후보나 당선자 시절에도 준비에는 철저했지만, 이번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리 준비를 재촉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네 다섯 차례의 토론식 회의를 하는 동안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 내용을 다 소화하려면 연설시간이 한 시간은 족히 넘을 듯 싶었다. 연설팀은 당초에 생각했던 20분 짜리 연설을 첫날 회의를 마친 후 사실상 포기했다. 한번 회의를 하면 짧게는 3시간, 길게는 6시간 정도 걸리는 컨텐츠 생산 및 문안 작성 회의가 계속되었다. 대통령이 흐름을 잡고 구술해나가면, 실무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표현을 가다듬는 방식이었다. 몇 차례 회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최초의 컨텐츠들은 거의 모두 다른 내용으로 바뀌었다. 파병안의 처리가 미루어진 것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그리고 최종 마무리 과정에서도 몇 가지의 주제는 시간 문제 때문에 포기되어야 했다. 대통령은 아쉬움을 표했다. "코에서 단내가 나네요." 마무리 작업을 하던 월요일 저녁, 실무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통령은 요즘 일정의 고단함을 하소연하듯이 토로했다. 바로 전날인 일요일에도 장장 6시간에 걸쳐 문안 작성 작업을 했던 데다가 이날만 해도 수석·보좌관 회의 등 세 차례의 회의를 소화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회의가 끝난 것은 자정 무렵. 대통령은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마지막 마무리 문안까지 꼼꼼히 챙겼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회의를 지루하지 않게 한 것도 결국은 대통령의 몫이었다. 특유의 유머 섞인 농담들이 있었고, 일요일 회의 도중에는 관저 앞마당 잔디를 밟아보는 10여분의 휴식도 있었다. 실무자들의 집중력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을 마지막 문안 정리 과정. 대통령은 집중력이 오히려 더욱 높아지고 있는 듯 특별히 많은 주문과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연설문에서는 `뭐뭐 등` 하는 `등`을 쓰면 안되네." "연설은 때로 같은 말들을 되풀이하는 게 좋아." "시장개혁만으로 시장은 개혁되지 않는다! 이게 좋겠지?" 그 날 밤을 거쳐 그렇게 원고가 완성된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와 몇 군데 문구를 삽입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밤, 모든 원고를 다 회수해왔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원고가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어느 부분에 어떤 표현이 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거기 `거듭 강조해왔습니다`라는 부분 있지? 그 뒤에 이 이야기를 넣어주게!" 등이 사례였다. 대통령은 연설의 모든 내용을 거의 글자 하나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성의였다. 국민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예의였다. 그냥 의례적인 말로 멋을 부리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성심성의를 다해 설득을 하고 또 이해와 협력을 구해나가는 진지한 대통령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가 항상 강조해온 `신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혹자는 이번 국정연설을 보면서 너무 내용이 많지 않느냐고 문제 제기를 한다. 그러나 어차피 정치행위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말로 하는 것이 아닐까? 말을 많이 한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은 뒤집어보면 그만큼 열심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대통령은 말을 적게 해야 한다는 금기 같은 것은 이번 기회에 없어졌으면 좋겠다. <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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