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경제성장률이 세 번이나 수정되고도 신뢰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구설수의 도마에 오른 것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지난 17일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의 세부 내용에 대해 학계와 정부 일각에서 의문이 제기고 있다.
KDI가 내놓은 이번 전망치는 두 번째 수정치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폭은 매우 컸다. 5월 전망 당시에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올해 3.6%일 것이라고 내다봤던 KDI가 이번에는 무려 1.1%포인트나 끌어내려 2.5%로 고친 것이다.
KDI가 이처럼 단기간에 큰 폭으로 전망을 수정한 것도 이례적인데 그 세부내용을 고용ㆍ설비투자 등의 관측에 대해서는 정부와 일부 민간 연구기관 관계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특히 고용 부문이 입방아에 오른다.
이번 전망에서 KDI는 올해 취업자 수가 35만명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5월 전망에서는 30만명 안팎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고용 호조세가 계속되자 성장률은 내리면서도 취업자 수는 늘렸다는 게 KDI 측 설명이다.
반면 정부의 판단은 다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취업자 수가 20만명대로 추락하지 않는 한 올해 40만명 돌파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며 KDI의 관측이 억지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실제로 KDI의 관측은 정부가 잠정적으로 집계하고 있는 통계와는 차이가 크다. 통계청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4ㆍ4분기 이후 취업자 수는 분기별로 약 45만명 내외의 이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유럽 재정위기로 어느 때보다 성장률 전망이 어려웠던 시기였던 점은 이해하지만 정부 통계에 가장 근접해 있는 KDI가 독립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설비투자ㆍ소비 등에 있어서도 정부와 학계 일각에서는 KDI가 지나치게 전망을 보수적으로 잡은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내 가장 권위 있는 국책연구기관인 KDI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하반기 경기 회복세가 지지부진해 성장률을 내렸다지만 5월 전망과는 간극이 너무나 크다. 그렇다고 KDI의 5월 수정전망치 발표 이후 4개월간 세계 경제에 특별한 우발변수가 발생했던 것도 아니다. 유로존 재정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지부진했고 우리 경제 상황도 불확실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최근 중국 리스크가 조금 더 불거지기는 했지만 이 역시도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안이었다.
마침 지금은 정부가 주요 연구기관들의 경제전망을 바탕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는 시점이라 이번 논란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대표 국책연구기관이 매번 이처럼 구설수에 오른다면 자칫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타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KDI가 이듬해 경제성장률을 전망할 때에 원천적으로 장밋빛 낙관론을 배제하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분석해야 당해 연도에 이르러 이번처럼 대폭 전망치를 낮추는 수모를 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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