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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르네상스를 열자] `부채 200% 축소'서두르면 역작용

30대그룹 계열 A사는 지난 5월 알짜 부동산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었다.이 회사는 연초 주채권은행과 체결한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따라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 강남소재 싯가 6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외국투자자에 매각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양측은 절충끝에 400억원정도에 매각키로 원칙적인 합의를 이뤘으나 돌연 결렬됐다. 금융감독위윈회가 당초 2002년까지 부채 200%축소를 요구하다 3월에 느닷없이 이행시기를 99년말로 앞당기기로 하는 바람에 외국투자자가 이를 빌미로 절충가격 400억원은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협상하자고 나선 것. 결국 A사는 재협상 한달만에 절반가량 다시 깎아 헐값이나 다름없는 250억원에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부채비율 200% 축소는 우리나라의 기업과 은행의 재무구조 건전성을 국제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과다한 금융비용 부담을 안고서는 「깨진 독에 물붓기식」이기 때문에 부실의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국내 기업이 국제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대외신인도를 높여 외자유치를 촉진할 수 있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국내 상장사의 부채비율은 97년말 기준으로 351.5%. 미국의 153.5%, 일본의 193.2%, 독일의 145.0%, 프랑스 157.6%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이다. 부채비율 200% 축소는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라는 얘기다. 이같은 주문의 이면에는 재벌의 과다한 부채가 은행의 부실화로 연결돼 한국경제 전체를 부도위기로 몰고 온 주범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문제는 정부가 갑자기 압박의 강도를 높여버린 것. 지난 3월말 부채비율 축소 이행시기를 2002년에서 99년말로 급격히 당겨버렸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주채권은행들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지 한달도 안돼 다시 손질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연초까지만 해도 부채비율 축소에 대한 정부의 방침에 대체로 동감하던 재계의 거센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 기업경쟁력 제고를 빌미로 한 재벌 압박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실현가능성에 대한 논란부터 불거졌다. 정부는 은행과 기업의 유기적 협조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목표이고, 특히 총수의 의지여하에 따라 부채비율 200%는 전혀 불가능한 수치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현재의 여건상 실현불가능하고, 무리수를 둬 강행할 경우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다. 유상증자와 부동산매각, 계열사 정리, 이익실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취약한 증시기반과 부동산 시장의 위축, 고비용구조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뚜렷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게 재계의 입장이다. D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매각의 일시 추진은 대상 계열사 매매 가격을 더욱 하락시키며, 인수자측은 가격하락을 기다리게 돼 오히려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촉발시킨다』고 설명했다. 대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30대그룹이 99년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97년말 부채비율 기준으로 약 226조8,000억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97년말 기준 30대그룹 부채비율은 449.4%. 부채를 절반이상 줄여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 금액에는 부도나 화의기업 등의 부채가 포함된 수치지만 엄청난 자금을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과정에서 민간 경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과 관치금융의 재현도 시비거리로 불거지기도 했다. 재계는 부채비율 축소가 궁극적으로 기업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원칙에 동감하면서도 이행시기가 너무 촉박하고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을 경우 기업과 부동산 등 자산의 헐값 매각과 산업기반 붕괴 등의 부작용 초래를 우려하고 있다. 정문건(丁文建)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우리 경제여건은 기업구조조정과 경기회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며 『부채비율 축소는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성장잠재력까지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재계는 부채비율 200%를 99년까지 축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을 열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명분이 좋은 정책이라도 현실을 외면하는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어차피 부채비율 축소를 대외적으로 공표한 이상 정부정책 및 기업의 대내외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지만 제도적 보완이 선결돼야 가능하다는 논리다. 낙후된 금융 및 상거래관행상 장부상 부채는 실제 부채보다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꺾기 관행에 따라 기업이 실제소요액보다 많은 자금을 차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어음거래 비중이 높은 만큼 부채로 계상되는 지급 어음을 받을 어음과 상계처리하는게 합당하다고 재계는 주장하고 있다. 또 실질적으로 적립금성격에 해당하는 부채성 충당금을 독일처럼 부채계정에서의 제외해 줄 것과 연불대출금과 매출채권의 상계처리 등 회계제도상의 보완을 재계는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부채비율을 업종별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재벌 몰아치기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항공과 해운업은 환율상승으로 원화환산 외화부채가 급증했고, 종합상사의 경우 외상채권이 많아 수출을 많이 할 수록 부채가 많아지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채비율 200%축소대상에서 종합상사를 제외하자는 주장은 산업자원부조차 공감, 건의했던 사항이다. 결국 재정경제부와 금감위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정부내에서조차 일률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다. 구평회무역협회장은 『국내 종합상사의 부채비율은 경쟁국 일본 상사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데도 일률적으로 200%를 맞추라는 것은 부채비율축소의 취지인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어긋난다』면서 『종합상사는 재벌의 구조조정과는 별개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부채비율 200% 축소를 당초 개별 기업단위로 요구하다 최근 그룹단위로 하되 개별기업에 대해서는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만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남주하연구위원은 『부채비율 축소는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순기능과 함께 생산과 수출의 위축 등 역기능도 적지 않다』면서 『정·재계가 구조조정의 큰 틀에 합의한 만큼 기업이 부채비율 200%축소라는 현실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는 회계제도 개선,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활성화와 금융환경의 개선 등이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이세정 차장(팀장), 연성주·김형기·채수종·이훈·손동영·고진갑·정승량·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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