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이후 2,000선을 오르내리던 주가가 지난달 말부터는 연중 최고치를 잇따라 갈아치우면서 박스권 돌파 조짐을 보이자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역외펀드에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하반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한 이래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 자금을 회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증시의 차별적인 면모, 저평가 매력 등이 부각됐고 이에 따라 한국 증시 성장을 예상하는 해외투자가들이 역외펀드에 뭉칫돈을 넣고 있다.
6일 금융투자업계와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한국에 투자하는 14개 시카브펀드의 순자산은 16조2,572만2,453달러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7월 말(12조6,720만9,521달러)와 비교해 3조5,851만2,932달러 증가한 수치다.
국내 운용사들 가운데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시카브(SICAV)펀드를 룩셈부르크에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 시카브펀드란 국내 법이 아닌 유럽의 공모펀드 투자기준(유싯·UCITS)을 따르는 역외펀드다. 이 펀드는 유럽 27개국에서 현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어 여타 역외펀드에 비해 유통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14개 시카브펀드들이 해외시장에 설정돼 있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시카브펀드는 2011년 7월 순자산이 36억4,433만달러를 넘기면서 절정에 달했다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코스피지수가 2011년 상반기 2,200선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은 이래 같은 해 하반기부터 하락세를 보이면서 국내 증시에 베팅하던 해외투자가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해 미국이 테이퍼링을 결정한 이래 글로벌 시장에 풀렸던 유동성이 회수되면서 신흥국 시장이 타격을 입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견고하고 외환보유·해외수출 흐름이 우수한 한국·싱가포르 등 국가들의 차별적인 매력이 부각되면서 국내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들에 다시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한국 증시의 매력은 올 들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시카브펀드 14개 상품 가운데 12개 펀드가 연초 이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국운용의 상품들이 연초 후 10%를 웃도는 성과를 기록하며 수익률 상위 상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킴코리아밸류펀드'와 '킴코리아네비게이터펀드'는 연초 후 각각 15.48%, 11.57%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하자 한국운용의 역외펀드 순자산액은 최근 1억7,000만달러를 돌파했다. 킴코리아네비게이터 펀드는 박현준 한국운용 팀장이 운용하며 국내 주식형 펀드인 '한국투자네이게이터'와 동일한 전략을 구사한다. 킴코리아밸류펀드는 가치투자의 대가로 알려진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이 운용한다.
한국운용은 유럽 현지에 마케팅 거점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해외 기관투자가 선정 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임재엽 한국운용 해외마케팅 팀장은 "한국운용은 국내시장 투자에 실제로 관심 있는 기관투자가를 선정하는 자체적인 시스템을 활용해 콜투콜(Call to call) 방식으로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팀장은 이어 "한 해에 4,300회 기업탐방을 실시하며 쌓인 노하우를 반영해 시범 운용 과정에서 성과를 증명해 보이자 올 4월부터 4개월 만에 6,100만달러 유치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역외펀드의 선구자인 미래운용도 '미래에셋한국주식(Mirae Asset Korea Equity I €)'을 룩셈브루크에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 이 상품의 연초 후 수익률은 2.13%이지만 2008년 선도적으로 해외시장에서 진출해 설정한 결과 순자산액이 9,000억원에 달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 성장 가능성이 여전하고 최근 정책 모멘텀(투자기회 요인)까지 뒷받침되며 시카브펀드 시장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임 팀장은 "최근 배당 확대 등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할 만한 요인들이 등장하고 있어 국내 증시 성장에 따라 역외펀드의 대표 상품인 시카브펀드 시장도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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