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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아야 하는 이유
입력2003-10-21 00:00:00
수정
2003.10.21 00:00:00
`집값만 잡아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 15년 만에 모아놓은 것은 1억1,000만원짜리 전세아파트 하나다. 그나마도 최근 집값이 급등해서 전세 만기가 되면 마땅하게 이사할 곳도 없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냐.”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학을 나온 K씨(42)의 넋두리다.
그는 올들어 석달에 한번씩 모이던 동창회도 발길을 끊었다. 아내에게도 가급적이면 친구들을 만나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다.
“매달 200여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아이들 과외비와 생활비,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나면 빠듯하다. 벌써 3년째 양복 한 벌 사입지 않았다. 그런데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갈수록 쪼달린다. 나 자신이 왜 이렇게 초라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중견간부인 K씨는 올해부터 직장에서 업무보다는 속칭 말하는 재태크 가능성에 목을 매달고 있다.
`집값만 올라라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내 주업은 투자가다. 기업경영은 부업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후 10년 만에 벌어들인 재산의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얻어진 것들이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는 L씨(38)의 자신만만한 자기 소개다. 그는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 투자 등으로 올해만 5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다.
“투자도 부지런해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산시장은 커다란 흐름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좁은 지역내에서의 움직임이 보다 중요하다. 레버리지 효과(투자 대비 고수익을 올릴수 있는 비율)를 높일 수 있으려면 돈이 되는 정보를 발굴하고, 투자로 연결시키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L씨는 꽤 그럴싸한 투자정보를 얻게 되면 심지어 사업상 잡혀있던 회의시간도 연기하고 투자후보지를 직접 찾아가는 성의를 보인다고 말했다.
200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한푼 가감없는 생활상이다.
이상한 교육열, 정쟁으로 여념이 없는 정치권, 분식회계, 비자금 등등 한국은 지금 각종 골칫거리들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것은 집값 폭등이다. 적어도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집한칸 없이 신세한탄을 하는 K씨나, 기업경영보다 부동산투자 기회를 놓치는 것이 더 큰 손해라고 여기는 L씨 모두 한국이 만들어낸 시민들의 불행한 자화상이다.
<김형기(산업부 차장)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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