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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초대석/발자취] 경체부처서만 30년

아이디어 많아 "꾀돌이"강봉균원장은 지난 69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후 30여년을 줄곧 경제부처에 몸을 담아온 정통 경제관료다. 기획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많아서 '꾀돌이,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강 원장은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행조실장, 정통부장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두루 역임했다. 기획원출신인 강 원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노동부 차관으로 나갈 때까지 1번도 경제기획원을 떠난 적이 없고 기획원에 있는 동안 경제기획국장을 2차례나 지내며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국내 경제가 성장궤도를 치닫던 75년 당시 경제기획국 종합기획과의 진념 과장(현 경제부총리)과 강봉균 사무관은 경제개발계획 작업을 함께 했다. 그 당시 종합기획과는 수석 경제부처의 첫번째 국ㆍ주무과로서 경제부처 가운데 제일 중요한 과로 꼽였다. 이후에도 진과장이 기획차관보와 차관으로 승진했을 때 강 사무관은 각각 정책기획국장, 차관보로 뒤를 이었다. 지난 99년 5ㆍ24 개각에서도 강 원장이 재경부장관, 진 부총리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30여년을 콤비로 지내왔다. 강 원장은 KDI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종합기획관 사무관이던 70년대 초에 당시 KDI 초대원장이었던 김만제씨와 머리를 맞대고 국가 경제정책을 함께 짰고 이후에도 KDI의 연구위원들과 주요 경제정책을 만들었다. 또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국장을 마친 89년 1월부터 90년 4월까지 KDI에서 파견근무를 한 적도 있다.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봉직할 때는 왠만한 벤처기업가는 다 만나고 돌아다녀 소프트웨어업계에서는 "강 장관을 만나본 적이 없으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는 일화가 있다. 또 정통부의 공무원들에게 "경제 마인드가 부족하다"며 실ㆍ국장들이 "날마다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98년에 김대중 정권의 첫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될 당시, 정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호남출신이란 것을 빼고는 국민회의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 내정자는 "아직 DJ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99년 재정경제부 장관을 과오없이 마친 강 원장은 정치계로 뛰어들었지만 성남분당에서 쓴 고배를 맞봤다. 이후에 핸디소프트 경영고문, 한양대 경제학부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강 원장은 KDI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민주당 당적을 탈퇴하고 원장이 된 이후로는 고문직과 교수직을 버렸다.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될 때에는 정부에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겠다"는 강원장의 말처럼 KDI가 명실공히 최고의 씽크탱크로서 아무도 못하는 '입바른' 소리를 당당히 낼 지 지켜볼 일이다. ▦43년 전북 군산출생 ▦군산사범고 ▦서울대 경영학과 ▦행정고시 합격(6회)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국장 ▦KDI 파견근무 ▦경제기획원 차관보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재정경제부 장관 ▦한양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새천년민주당 분당갑 지구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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