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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24. 20년을 함께한 운전기사

예림당은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총판이나 도매상 거래보다는 서점과 직거래 비중이 높다. 영업직원도 많아야 되고 물류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어 초창기부터 이어가고 있다. 직거래를 하면 무엇보다 적극적인 영업을 펼칠 수 있다. 이를 통해 구축되는 인맥은 책의 판매와 여러 가지 자료 수집에 도움이 된다. 지금이야 교통수단이 편리하지만 옛날에는 차량도 없이 무거운 책을 손에 들고 배본 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책이 40종을 넘어서자 더욱 큰 문제가 생겼다. 대형서점의 경우 종류별로 10부씩이라도 한꺼번에 400부 이상 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럭이나 짐꾼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예림당이 연륜이 오래되고 규모가 더 큰 출판사들보다 배본용 차량을 먼저 구입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1978년 7월18일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한 소형 화물차를 인수했다. 운전기사도 미리 확보해 두었고 책이 눈비를 맞지 않도록 차량에 탑을 설치하고 회사마크와 로고도 새겨넣었다. 화물차가 회사 앞에 도착하는 날 영업 사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환성을 질렀다. 무거운 책을 들어 나르는 힘든 일에서 해방됐다는 의미가 컸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서울 시내와 수도권 지역은 트럭으로 배본을 했다. 아침마다 트럭 가득히 책을 싣고 서점을 돌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차가 나온 지 두 달 후 트럭에 책을 싣고 지방 출장을 가려고 했더니 기사는 운전이 서툴다며 꽁무니를 뺐다. 그래서 9월23일 김영윤씨를 기사로 새로 채용하고 다음날 출장 길에 올랐다. 화물차에 책을 가득 실은 규모는 정가로 쳐서 약150만원 정도가 됐다. 작은 차에 책을 너무 많이 실었더니 남산 길을 올라가는데 엔진이 자꾸 꺼졌다. 언덕길을 올라가지 못해 후진을 하여 다시 올라가는가 하면 지그재그로 방향으로 운전을 하면서 겨우 고개를 넘었다. 첫날 이리, 군산, 김제, 정읍, 전주를 거쳐 광주로 가서 재고조사를 하고 팔린 책을 보충해 주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들었다. 광주에서 몇 군데 서점에 들려 일을 마쳤을 때는 이미 밤10시 가까이 되었다. 다음 목적지는 목포였다. 기사는 너무 피곤하니 광주에서 자고 아침 일찍 목포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일단 목포까지는 가자고 했다. 다음날 보다 일찍 일을 시작해 다음 행선지로 이동할 수 있겠다는 심산이었다. 결국 광주를 떠나 통금 시간이 임박할 무렵 목포에 도착했다. 차량을 가지고 이처럼 강행군을 해서 전남북, 경남, 부산, 경북 지역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고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2~3일 정도 일정을 단축할 수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지방 출장 길을 함께하며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김영윤씨는 그 후 창고 관리장을 거치면서 20여 년을 예림당과 함께한 후 몇 해 전부터는 개인택시를 하고 있다. 대신 장성한 그의 딸이 대를 이어 우리 출판사 마케팅부에서 근무하며 인연을 맺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안 김영윤씨는 회사의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며 회사 후배들이나 동료들에게는 모범이 되었다. 지금 예림당에는 창업 초기 멤버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10~20년 이상 한 솥 밥을 먹는 직원들은 여럿이 근무하고 있다. 사내결혼을 한 커플도 많고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가 출판사 등을 창업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다. 교분을 맺은 후 작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건만 그들을 생각하거나 볼 때마다 어떨 때는 미안함이, 또 어떨 때는 고마움이 교차됨을 느낀다. 그들이야말로 어려운 시절 고락을 함께 했던 인생동지이자 오늘의 예림당이 있게 한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입사한지 몇 년 되지 않았더라도 직원들이 `가족`이라는 마음을 저버린 적은 없다. `주인`인 그들이 언제나 믿음직스럽고 고맙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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