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0일 찾은 경북 왜관의 엘앤에프신소재 공장. 통상 12월은 비수기였지만 직원들은 연말 분위기를 즐기기는커녕 2교대로 근무하는 24시간 풀가동 체제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2차전지 소재업체인 엘앤에프신소재는 국내외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 이번에는 회사 차원의 종무식도 갖지 못했다. 지난 2005년 일본 수입에 의존하던 2차전지용 양극활물질을 국산화한 엘앤에프는 현재 삼성SDI와 LG화학에 제품을 공급하며 불과 5년 만에 일본 니치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3대 메이커로 우뚝 섰다. 최수안 엘앤에프 연구소장은 "양극재 분야에서 일본의 독점구조를 무너뜨린 데 이어 전지 적합성 등 품질 면에서도 세계최고 수준임을 자부한다"며 "올해에도 국내 2차전지 업체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통형 리튬이온을 앞세운 국내 2차전지 산업이 글로벌 1위에 오르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중소기업들의 탄탄한 원천기술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2차전지의 고속성장 비결로 대기업의 과감한 선행투자와 함께 부품소재 기업들의 발 빠른 협력, 탄탄한 원천기술력을 꼽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단기간의 국산화 개발을 통해 공급가격과 납품기한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며 글로벌 무대에서 든든한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리튬이온 2차전지 산업에는 핵심 소재 및 부품ㆍ장비 등을 통틀어 약 30곳의 국내 중소기업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 강소기업은 최근 5년 사이 양극활물질ㆍ전해액 등 핵심소재를 잇따라 국산화하는 개가를 올리며 한국경제의 미래에 희망을 주고 있다. 주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5년 이후 2차전지 소재 국산화가 급속한 성과를 내면서 주요 소재의 국산화는 거의 이뤄진 상태"라며 "음극재료 역시 인공탄소 제조단가 문제 때문에 양산단계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 관련기술은 이미 확보해놓았다"고 평가했다. 주요 소재의 국산화율을 따져보면 양극소재 70%, 음극소재 1%, 분리막 25%, 전해액 85%가량이다. 분리막은 SK에너지가 주요 생산기업이며 전해액은 테크노세미켐이나 후성ㆍ욱성화학 등이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가장 성과가 높은 분야는 양극재다. 엘앤에프신소재는 니켈과 망간ㆍ코발트가 들어가는 NMC계열에서 글로벌 톱으로 도약했으며 에코프로도 양극활물질을 만드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 전구체'를 양산해 국내 2차전지 브랜드에 공급하고 있다. 통상 2차전지 생산원가에서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수준에 이르는데다 양극재가 소재비용의 50%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만큼 국산화에 따른 파급효과도 클 수밖에 없다. 민천홍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소재 국산화 이후 일본 독점구조가 깨지면서 초기에 일본 기업의 공급가격이 30% 이상 급락하는 상황도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2차전지 조립이나 검사에 들어가는 장비도 속속 국산화가 이뤄지고 있다. 로케트전기의 자회사인 로케트ENT는 조립공정용 장비를 국산화해 2006년부터 국내 2차전지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로케트ENT의 장비는 분당 200개 수준의 조립능력을 갖춰 일제에 비해 두 배 수준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분당 300개까지 조립 가능한 설비개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수요기업에 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조립장비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밖에 한림포스텍과 원아텍 등도 주요 장비공급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차전지 보호회로 제조와 패키징 분야에서도 넥스콘테크톨로지ㆍ서원인텍ㆍ영보엔지니어링ㆍ새한에너테크 등의 업체들이 뛰고 있다. 특히 정부가 최근 세계시장 선점 10대 소재개발 사업(WPM)을 통해 2차전지용 양ㆍ음극재 개발 지원에 나서면서 개발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성장에 힘입어 관련업체들의 신규 진출이 잇따르는 것도 시장 전망을 밝게 한다. 주 연구위원은 "2차전지 같은 대규모 장치산업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실력 있는 중소기업을 키워내야 한다"며 "수요 대기업과의 공동개발 작업과 함께 기술에서 앞선 일본 기업과의 합작을 정책적으로 유도한다면 국산기술 개발 및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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