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하면서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중앙은행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물가안정만 추구하는 목표를 손질해 금융감독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차제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물가 안정 외에 고용 안정, 다시 말해 성장지원을 정책목표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소수지만 한은 내부에서 제기된다.
한은법 개정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이 총재의 취임. 이 총재는 1일 취임사에서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ㆍ성장 또한 조화롭게 추구하라는 게 국민의 시대적 요구"라고 역설했다. 게다가 이 총재가 현오석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격 회동하는 등 속도감 있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한은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은 역할 재정립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뜨거운 이슈였지만 2011년 9월 한은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한은법 개정이 실제 추진되기까지는 넘을 산이 많다. 한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국회 등 관련 기관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어떤 권한을 얼마나 나눌지에 대해서는 타협점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추세" vs "시기상조"=한은의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에 대해서는 이 총재뿐 아니라 전임 총재들도 아쉬움을 표해왔다. 김 전 총재는 퇴임사에서 "한은에 조금 더 확대된 금융안정 책무를 부과하는 것이 글로벌 추세에 더 적합한 중앙은행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목적조항이다. 한은법 제1조1항에 적시한 '물가안정'에 '금융안정' 혹은 '고용 내지 성장'을 추가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오랫동안 굳어진 '절간' 이미지를 불식시키겠다는 몸부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반영한 2011년 한은법 개정 당시 한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양대책무(dual mandate)로 두려 했으나 '금융시장 안정'을 설립 목적으로 둔 금융위의 반대로 '금융안정'은 1조2항으로 밀렸다. 그나마 법적 문구도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로 격을 낮췄다.
미국 연준처럼 아예 '성장' 혹은 '고용'을 목적조항에 나란히 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갈수록 떨어지는 잠재성장률을 감안해 한은도 성장 또는 고용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정고갈로 정부의 경제정책 수단이 점차 줄어드는 현실을 본다면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경제팀을 이끄는 기획재정부는 한은이 성장 문제에 신경을 쓰겠다면 반색할 일이지만 일단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기재부의 고위관계자는 "미국 연준이 고용을 중앙은행 목적으로 적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따라갈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경제성장률 4%대 달성, 고용률 70%대 진입 등 벌려놓은 정책이 첩첩산중인 상황에서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드는 것도 정부는 부담이다. 고용안정을 한은 목표에 넣는다면 권한 축소가 정부로서는 손실이다. 한은 역시 고용안정을 새로운 목표로 둔다면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빅딜 가능할까=한은 입장에서는 목적조항에 고용안정을 반영하는 대신 금융감독권을 강화하는 '빅딜 구상'도 해볼 만하다. 성공시에는 금통위 의장직을 받고 은행감독원을 내줬던 1997년 한은법 전면개정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한은은 2011년 법 개정을 통해 감독권을 일부 확대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한은이 금감원에 공동검사 요구시 금감원이 '1개월 이내'에 응하도록 시행령을 손보고 비은행 자료제출요구권을 추가했다. 하지만 금융위ㆍ금감원 반대로 단독조사권을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자료제출요구권 역시 전업계가 아닌 자산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곳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한은의 감독권한 확대에 대해 감독당국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한은이 감독권한을 확대할 경우 중복규제와 규제혼선 등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최근 동양 사태, kt ens 대출사기 등 잇따른 사건 사고로 금감원 입지가 좁아질 만큼 좁아졌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법 개정 대신 협의체를 두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 같은 협의체를 구성해 유관기관 간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재무부·연준·금융소비자보호국 등 금융안정기관이 FSOC를 통해 유기적인 통합감독체계를 구축, 견제와 균형을 통해 감독실패를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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