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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빈 말로 고통을 달랠 수는 없다
입력1998-10-08 18:42:00
수정
2002.10.22 10:50:39
정치는 결국 분배다.
정치가 분배하는 것은 손에 잡히는 과실만이 아니다. 고통과 희망까지 고루 나눠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과실과 고통과 희망을 적절히 배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정치는 역사가 증명하듯 예외없이 배척당해 비참한 종말을 불렀다.
현재 우리 정치가 떠안고 있는 분배 역할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복잡하다. 계층간, 세대간 뿐 아니라 지역간에도 적정 배분을 실현해야 한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맞아 유례없이 쪼그라든 성장의 과실을 나누면서, 엄청나게 커진 고통과 불확실한 희망까지 나눠줘야 하는 처지다.
유감스럽게도 정치는 나눌 몫을 스스로 키우는 기능은 없다. 정치가 활약하는 분배의 현장에선 한쪽이 많이 가지면 나머지는 그만큼 몫이 줄어든다.
정치의 생산적 기능을 굳이 찾는다면 내일의 더 큰 몫을 위해 오늘을 비축하도록 유도하는 길이다. 당장 입에 넣을 몫을 줄이는 대신 밝은 미래를 펼쳐보이며 국민들의 허기를 달래야 한다. 정치가 조삼모사(朝三暮四)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끓어오르는 불만을 감당치 못해 몰락을 걸을 뿐이다.
분배의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정치사는 어떤 모습인가.
1·2공화국때 우리 사회는 국민 대다수의 기본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생산력이 모자랐다. 당시 정치는 부족분을 외국으로부터 원조받거나(1共),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 곧 형편이 펴질 거라는 희망을 주는(2共) 데 그쳤다. 3공화국 들어 우리 정치는 내일의 더 큰 몫을 위해 오늘 대다수가 참고 견디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는 다소 성공했지만, 다수의 불만을 독재로만 억누르다 권력자의 비명횡사로 막을 내렸다.
5·6공과 「문민」정부때 와서 정치는 분배 중개의 역할을 사실상 스스로 포기한다. 사법절차로 이미 확인된 것처럼 정권과 소수 추종세력은 자기 몫 챙기기에 눈이 어두워 국가 구성원간의 적정 배분을 나몰라라 방치했다.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정치는 그 존재이유를 의심받으며 손가락질 당했고, 사회는 거품으로 잔뜩 부풀려진 「화폐 환상」의 무정부상태를 헤맨 끝에 IMF구제금융의 국치(國恥)를 맞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루며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분배의 관점에서 어떤 정치를 펴고 있을까.
현재 정부는 100조원이상 대규모 국공채 발행을 당연시하는 인상이다. 구조조정 재원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채는 당장 눈앞의 부담이 적을 뿐, 이자가 이자를 낳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오늘과 내일간의 적정 분배라는 정치 기능으로 볼 때 「국민의 정부」가 후손의 부담을 줄이려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했는 지 한번 짚어 볼 일이다.
계층간 분배에서 「국민의 정치」는 대다수 서민에 부담이 넘겨지는 교통세등 간접세 인상에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시행가능한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무슨 까닭인지 자꾸 미루고 있다. 세금부담의 계층간 형평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는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고통 분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정치는 출범전부터 노사정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그동안 근로자들은 실직, 임금삭감등 온갖 고통에 부대껴왔다. 반면 사(使)는 내 몫을 조금도 잃기 싫다는 자세로 일관, 국내외에 약속한 「빅딜」을 공수표로 만들고 말았다. 정부와 정치권등 정(政)측은 아직 고통분담과 개혁에 흔쾌히 동참하는 몸짓을 보인 적이 없다.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는 최적(最適) 분배가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노(勞)는 고통의 거의 전부를, 사와 정은 허언(虛言)의 약속을 나눠갖는 불균형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이러다가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의 낭떠러지로 그냥 굴러버리는 것은 아닌가.
국민의 정부는 출범때 『땀과 눈물과 고통을 나누어 다시 일어서자』고 약속했다. 벌써 7개월반 이상 국민들은 그 약속의 의미를 곰곰히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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