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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3명을 싸잡아 공격하고 나선 것은 기존 세력과의 완전한 분리를 선언하는 한편 이를 통해 이른바 ‘영남 후보론’을 내세우겠다는 뜻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여권의 통합 신당 움직임을 또 다른 ‘보수세력의 응집’으로 규정하고 자신만의 독자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른바 대선정국에서 ‘노 대통령 역할론’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우선 고건 전 총리를 기용한 것을 ‘실패한 인사’로 단정지었다. 고 전 총리를 매개로 우파 진용을 끌어당기려 했지만 오히려 ‘왕따’가 됐다는 것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일단 “보수와 진보의 가교 역할을 기대하고 고 전 총리를 기용했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허심탄회한 자기 고백성 언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노 대통령이 초기 인사에서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자기 반성적 언급의 성격이지만 뒤집어보면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의 희망과 기대를 저버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고 전 총리에 대한 실망감의 우회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가에서는 그런 식의 해석에 동의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통합 신당의 직접적인 외곽 연대세력이 될 수 있는 고 전 총리를 ‘합신당파=보수정당’의 상징물로 치부해버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냐는 분석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의 고 전 총리 관련 언급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정부 출범 초기에 진보적 성향의 노 대통령이 보수층을 껴안기 위한 포석으로 고 전 총리를 기용했지만 결국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취지다. 오히려 고 전 총리 기용으로 참여정부만 ‘왕따’가 됐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일차원적 해석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자신을 링컨 미 대통령으로 비유하면서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을 공격했다는 점이다. 김근태ㆍ정동영 측 통합 신당파에겐 사실상 함께 같은 당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공식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열린우리당 내 친노-반노간 갈등을 격화시켜 당 해체 수순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무엇보다 세 사람에 대한 공격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 중 하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영남후보론을 수면 위로 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란 점이다. 이른바 ‘노무현 당’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여권 내에서는 벌써부터 영남후보로 김혁규ㆍ김두관 의원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고 전 총리 측은 당혹해 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 저의가 뭐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도포럼’ 구상을 들고나오면서 고 전 총리 중심의 신당론을 전개했던 김성곤 의원은 “범여권에서 그나마 버텨주는 후보인데 그렇게 폄하한다면 범여권이 몰락할 수 있다”면서 “고 전 총리가 대선후보로서 차별화를 위해 노 대통령과 정책 견해가 다른 것을 얘기할 수 있지만 노 대통령이나 고 전 총리나 서로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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