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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은 1938년 3월 22일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삼성그룹의 싹을 틔웠다. 조그만 사무실과 전화기 한대, 직원 40명으로 출발한 삼성상회는 별표국수를 팔았다.자본금은 고작 3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삼성상회는 해방 직후 삼성물산공사로 발전해 설탕과 섬유, 무역업을 통해 규모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1969년에는 삼성전자를 설립하고 1970년에는 금융과 중화학, 전자기업으로 변모해 사업 다각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의 성장은 호암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의 취임과 함께 빠르게 이뤄졌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하면서 삼성그룹은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내기 시작했다.
반도체사업을 시작으로 휴대폰과 LCD 등 전자 사업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1993년 이후 20년 동안 삼성그룹의 연계 매출은 29조원에서 13배 늘어난 380조원으로 늘어났고, 세전 이익의 경우 8,000억원에서 47배 급증한 38조원에 달했다. 해외 직수출은 107억 달러에서 1,572억 달러로 증가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임직원 수는 14만명에서 42만명으로 늘었다.
삼성그룹의 총 자산은 41조원에서 543조원으로, 납세금액의 경우 1조6,000억원에서 13조2,000억원으로, 시가 총액은 7조6,000억원에서 338조원으로 44배 증가했다. 삼성그룹 내 계열사의 월드베스트 제품은 삼성전자가 11개, 삼성코닝정밀소재 1개, 삼성SDI 1개 등 모두 합 해 20개에 달할 정도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이 회장은 해외 현장을 직접 돌며 임직원들에게 신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불량 제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화형식을 열게 하는 등 임직원들의 의식을 깨워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 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을 정도다.
임직원들에게는 기회균등 인사와 능력주의 인사, 가능성을 열어주는 인사 등 열린 인사 시스템을 통해 분발을 이끌어낸 데 이어 질 위주의 경영 패러다임 전환으로 삼성을 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신경영은 이미 해외 경영학계에서도 연구의 대상이 될 정도로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낸 이벤트”라며 “이 회장의 질 경영이 결국에는 삼성그룹의 체질 변화와 함께 위상 도약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삼성그룹은 인재 경영과 과감한 투자,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 수립 등으로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글로벌 톱 브랜드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주력사업 중 메모리반도체와 LCD, TV에서 세계 시장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을 제치며 역시 1위의 면모를 과시 중이다.
삼성그룹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미래를 위해 5대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고 싹을 틔워 새로운 새로운 삼성그룹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감한 인재 양성을 통해 현재의 삼성그룹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도 현재보다 더욱 성장한 삼성그룹의 면모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 회장은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다. 부정보다도 더 파렴치한 것이 바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라고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한다. 결국 지역전문가 제도와 테크노MBA 과정, 소시오 MBA 과정 등을 통해 임직원들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현재에 안주하고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기 보다는 미래의더 큰 삼성을 위해 연구개발에서부터 다양한 사업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며 “올해로 창립 75주년을 맞은 뒤 25년뒤에 100년 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 모든 임직원이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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