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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2> 피고인을 위한 기도

"판결로 입은 마음의 상처 내 기도로 치유될수 있다면…"


임관 첫 해였다. 2005년 봄.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장편소설을 읽었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이유 없이 몰매를 맞아야 했으며, 눈 먼 어린 동생이 길거리에서 맞는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하루하루가 절망이었던 주인공 윤수가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 또 회개하는 과정을 보며 마음 아팠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소설 속에서 윤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가 교도소에 있는 윤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장면이다. 그 카드에는 “판사인 나 김세중은 당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인간인 나 김세중은 당신을 위해 기도할 뿐”이라고 씌여 있었다. 그 후 나는 형사부에서 근무했던 기간 동안 문득 문득 판사 김세중이 생각났다. 10대나 20대 피고인들, 그들이 법정에 서게 되기까지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이미 세상으로부터 씻기 힘든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다. 이미 몇 차례 절도 전력이 있었던 한 피고인은, 지난 범행으로 교도소에서 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부모님이 문을 열어주지를 않았고, 그래서 집 앞에서 하루종일 무릎을 꿇고 부모님이 자신을 받아주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피고인을 끝내 집에 들여놓지 않았고, 그 후로 친구 집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했지만,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너무 배가 고파 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피고인은 반성문에서 한 번만 용서해주면 절대로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살겠다고 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부모에게 효도하겠다는 다짐이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을 수 없는 그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가 다시 출소할 때에는 따뜻하게 그를 받아줄 누군가가 있기를, 그리고 그에게 땀 흘려 일해 얻는 기쁨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일자리가 어딘가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매번 수도꼭지 같이 눈물을 쏟는 피고인이 있었다. 50대 중반의 그녀는 마을버스 운전수였다. 여자로서는 고된 버스운전을 택하기까지 그녀의 삶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과는 이혼했고 자식 중 아무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버스 운전 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를 치었고, 그 후 할머니는 식물인간이 됐다. 버스 운전으로 버는 돈 이외에는 아무런 재산이 없었던 그녀는 할머니의 가족들과 합의할 수 없었다. 할머니 가족들은 그녀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아마도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난생처음 구속돼 수갑을 차고 법정에 선 자신에게 선고될 형에 대한 두려움이 때문이었으리라. 횡단보도 앞에서 왜 속력을 줄이고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던가 하는 뼈저린 후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할머니의 현재 상태를 아냐는 질문에 자기 대신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의 상태에 호전이 없음을 확인하였다는 검사의 진술에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의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별다른 전과는 없었지만,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쳤고, 피해자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그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받지 못했기에 실형은 불가피했다. 자신에 대하여 선고된 판결을 듣고 또다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할머니를 위해, 또 그녀를 위해 기도할 뿐이었다. 법정에는 불우하고, 버림받은 흉터투성이의 삶이 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피고인들, 그러나 용서 받지 못하는 그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있다. 아마 판결선고로 치유될 수 없는 그들의 상처 입은 영혼,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판사의 길을 걸어갈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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