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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각종 경제특구ㆍ지역개발특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에서부터 연구개발특구ㆍ첨단의료복합단지ㆍ지역특화발전특구, 그리고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등에 이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까지 온 국토가 흡사 '개발특구'로 치장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개발지연이나 중복지정은 물론이고 벌써부터 좌초되는 사업까지 나오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대형 사업은 주로 합리적인 수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치적 구호로 잉태됐다는 한계로 갈수록 문제점을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개선책과 구조조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각 지자체가 프로젝트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다 보니 행정력 낭비와 함께 지역 간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결국 국론분열의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선택과 집중, 그리고 엄격한 평가 시스템 구축을 비롯해 국토개발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범부처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현재 갖가지 특구를 비롯한 대형 사업들이 경제적 타당성보다 지자체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과다하게 지정돼 있는 '특구 공화국'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러다 보니 선택과 집중에 따른 특구 목적에 맞는 자생적 경쟁력을 갖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너도나도 '특구' 지정…특구공화국 전락=23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최근 들어 각 지방자치단체의 연구개발특구 지정에 대한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기존 대덕연구단지에 이어 광주와 대구를 연구개발특구로 추가 지정하면서 각 지역이 너도나도 특구 지정 추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주와 부산이 공식적으로 특구 지정 신청서를 접수하면서 지경부는 일단 어느 정도 요건을 갖춘 부산 지역에 대한 특구 지정 여부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많은 지자체가 대덕연구단지를 성공모델로 떠올리면서 연구개발특구 지정을 원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요건을 갖추면 지정해줄 수 있지만 특구를 남발할 수만은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특구뿐 아니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갈수록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당초 충청권 입주가 유력했던 과학벨트를 정부가 최근 백지화하면서 공모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광주∙전남과 전북, 대구∙경북, 경남 등 전국 자치단체들이 일제히 유치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가 각종 특구를 잇따라 지정하다 보니 특구끼리 중복되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대구의 경우 기존에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있었으나 지난 2009년 첨단의료복합단지로까지 지정되면서 기능중복 문제점도 불거진 상황이다. 산업특구뿐 아니라 과거 정부 때부터 추진됐던 기업도시나 혁신도시도 시간이 갈수록 동력을 잃고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전북 무주에 7.7㎢ 규모로 건설하려던 '무주관광레저형 기업도시' 계획을 취소하고 개발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무주 기업도시는 지난 2005년 참여정부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등과 함께 지역균형 발전의 하나로 추진됐다. 현재 기업도시는 무주가 취소된 가운데 충주ㆍ원주ㆍ무안ㆍ태안ㆍ영암 지역 등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무주뿐 아니라 무안 기업도시 역시 사실상 좌초된 상황이다. 무안에는 3,295만㎡ 규모로 대단위 산업단지가 당초 조성될 계획이었지만 투자자들이 모두 이탈해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공공기관 이전을 계기로 지방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조성되는 혁신도시도 문제다. 부산과 대구 등 전국 10곳이 혁신도시로 선정되면서 토지보상비로만 이미 5조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정작 민간에 판매된 주택ㆍ상업ㆍ산업용지 분양률이 10% 안팎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용지와 상업용지만 15%가량 팔렸을 뿐 민간기업이 들어가는 산업용지 판매율은 2%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허재완 도시국토계획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기업도시나 혁신도시의 경우 국토개발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연구결과에 따른 개발이 아니고 정치인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정치적 희망에 따른 공급형 도시다 보니 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고 있어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필요성 부각=각종 특구와 대형 국책사업들이 하나둘씩 문제점을 드러내다 보니 정부가 나서 칼을 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경우 지자체들과의 마찰 등으로 당초 구조조정 범위가 계획보다 크게 축소되고 만 결과도 나오고 있다. 지경부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는 전체 경제자유구역 면적의 15.9%에 달하는 90.51㎢를 전격 해제했다. 당초 정부는 전체 면적의 30%가량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생각하고 추진했으나 지자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대상폭이 절반으로 줄었다. 권평오 지식경제부 경제자유구역단장은 "경제자유구역이 개발 수요보다 과다하게 지정돼 있고 장기간 개발지연으로 주민들의 재산권마저 침해되는 문제가 나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번에 해제되지 않은 지역일지라도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개정 법률안에 따라 실시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3년 후에는 당연히 해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자유구역뿐 아니라 기업도시나 혁신도시 등도 선택과 집중 또는 순차적 개발 등을 통한 보안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정부가 엄격한 경제성이나 차별성을 따지지 않고 특구 지정이나 국책사업을 남발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며 "사업이 진전되지 않는 곳은 과감하게 도려내거나 체계화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과 경쟁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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