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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초대석]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입력2003-12-28 00:00:00
수정
2003.12.28 00:00:00
최형욱 기자
“만약 올해 안에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할 경우 칠레 시장에서 우리가 입게 될 피해도 피해지만 세계 FTA 무대에서 배제되어 가뜩이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뿌리채 흔들리게 됩니다.”
박용성(63)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파격적인 소신발언 탓에 `재계의 입`으로 통하는 기업인. 두산중공업 회장, IOC 위원, 국제유도연맹회장 등 50여개의 직책을 맡아 일년 중 150여 일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정렬적인 활동가인 박 회장을 서울역 앞 게이트웨이 타워의 상의 사무실에서 만나 2003년 한해를 정리했다.
그는 대담을 시작하자마자 29ㆍ30일 국회 본회의 비준을 앞둔 한ㆍ칠레 FTA 체결에 대한 우려부터 털어 놓았다. 박 회장은 또 평소 성향답게 `정부 정책은 기업이민 장려책`, `초등학생만 아는 시장경제 원리를 정부만 모른다` 등 특유의 쓴소리도 쏟아냈다.
▲한ㆍ칠레 FTA 동의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 본회의로 넘어갔습니다만.
- 국회비준이 이뤄진다 해서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게 아닌 만큼 후유증과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로서는 이미 국회를 통과한 농특세연장법을 제외한 3대 특별법안의 차질 없는 이행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농심(農心)을 안정시키고 정책 신뢰를 되찾는 데 힘써야 합니다. 또 직접지원 방식에서 탈피해 기술투자 확대, 바이오산업 육성 등을 통해 농촌의 자생력을 키우고 농업의 구조고도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거의 다 돼 가는데 공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정치 개혁이나 탈권위, 대화중시 등 전반적인 국정 운영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노동 및 기업에 대한 과도한 개입 등으로 경제 성장률이 사상 세번째로 낮았습니다.
지난 정부와 비교한다면 현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각종 로드맵은 상대적으로 바람직합니다만 문제는 (정부 의도와 달리)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시대에 역행하는 길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불러일으킵니다.
경제 주체들이 모두 정부의 중장기 정책 비전에 대해 안정감을 갖고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내년 경기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 지요. 정부는 내수 침체에도 수출 호조에 힘입어 완만한 경기회복을 장담하고 있는데요.
- 7%대 성장을 전망하는 연구기관도 있지만 과연 수출만으로 가능할 지 의문입니다. 특히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버티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달합니다. 일자리 창출, 내수 회복 등을 통해 `전국민의 경제`를 이루지 않는 한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자율 삭감 등 획기적인 신용불량자 대책이 필요합니다.
▲ 최근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를 계기로 정치자금법, 더 나아가 정치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만.
- 사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동안 투명경영을 그토록 강조했는데 이런 사태가 터져서….(이 대목에서 박 회장은 속사포 같던 발언을 이어가지 못한 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사는 하되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책, 즉 돈 안쓰는 정치 시스템 정착입니다. 김영삼 정부 때도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이 터졌듯이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정ㆍ재계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 기업이 먼저 정치자금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는 등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는 방법은 없을까요.
- 기업인에게 성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투명 경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양심선언을 했다가는 소액주주들의 줄소송, 시민단체와 노조의 고소ㆍ고발, 대외 신인도 하락 등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 중국 경제의 급부상, 이로 인한 대중국 의존도 심화가 한국에 위기감을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만.
-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큰 시장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기회 요인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단순 의류제품부터 인공위성까지 만드는 나라입니다. 중국이 결코 우리에게 탈출구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지난달초 중국한국상회 창립 10주년 행사에 참석했는데 거대 시장이나 낮은 인건비 등 막연한 기대만 갖고 진출한 기업들은 모두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기치로 내세운 `동북아 허브` 전략 역시 중국변수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센프란시스코나 뉴욕하고 경합하는 것이 아닌 한 바로 이웃해 있는 상하이에 주목, 서울이나 인천이 상하이보다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새로운 성장 동력 상실 및 산업공동화, 노조 파업등에 따른 기업가 정신 퇴조 등에 따라 한국 경제호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정부를 탓하기 전에 기업도 생존 차원에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 IMF 외환위기 때 기업인들이 가장 변했습니다. 지배구조 및 기업 투명성 개선, 수익위주 경영을 정부가 말하기 전에 변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단적인 예로 외환위기 당시 30대 그룹 중 17개가 도산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기업의 노력, 절반만 따라온다면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이 대목에서 `기업은 이류, 정부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말했던 이건희 삼성회장의 베이징 발언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박 회장은 “잘 모르겠다”고 받아넘겼다)
▲그렇다 해도 국내 제조업의 상당수가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부가 산업의 해외 이전은 불가피한 측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방관 내지 조장하는 `기업이민 정책`을 펴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세계 최대 신발 생산국이던 한국이 이제 수입국이 되었고, 섬유도 고부가 산업 운운하다 고사상태가 됐습니다. 앞으로 10년은 더 한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왜 밖으로 내쫓습니까. 일본에는 아직도 방직ㆍ합판 회사가 있습니다. 인건비가 우리보다 3배나 비싼 데도 모두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에 이어 `이태백` 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실업 문제가 심각한 수준입니다만.
-투자를 해야 일자리도 늘어나는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됩니다. 노동 유연성 확보, 각종 규제 철폐 등이 이뤄지면 기업 투자가 늘고 실업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됩니다. 어느 기업주는 골프장을 지으면서 찍은 관공서 서류 도장이 760개라면서 분통을 터뜨리더군요. 요즘 같은 `국경없는 경제` 시대에 수익률도 낮고 규제도 많은 국내에 투자를 고집하면 그 기업의 수명이 얼마나 가겠습니다. 정부는 왜 초등학교만 나와도 이해할 수 있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 최근 SK 사태에서 보듯 외국 투기 자본의 부작용도 커지고 있는데요.
- 그렇다고 관치금융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외국계 은행들이 기업 금융보다는 개인 대출에 편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경제 사정이 바뀌어 수익성이 난다면 기업 금융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외국 자본의 횡포도 국내 산업 자본의 금융 진출을 막는 등 역차별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손`으로 시장을 조절하려 합니까. 재벌의 폐해가 있다면 부채비율 등 글로벌 스탠더드로 해결하면 됩니다. 출자총액제한 등 해외에서는 전무후무한 제도로 국내 기업을 묶으려고만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담= 이종환 부국장 겸 산업부장
■ 박용성 회장 말말말
`들쥐론` `원숭이론` `떼법` 등 잇단 거침없는 독설로 눈길
박용성 회장은 화끈하면서도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하다. 독설의 대상도 정부와 노동계는 물론 재계까지 전방위로 넘나든다. 때로는 설화(舌禍)를 우려하는 주변의 시선도 있지만 내심 `속 시원하다`고 반기는 게 대체적인 재계 분위기다.
박 회장 화법의 매력은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기업인의 소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다 그 비유가 오랜 경험과 사고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 건을 적절하게 지적하는 데서 나온다. `들쥐론`, `걸레론`, `원숭이론` 등이 모두 그렇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를 중심으로 박 회장의 발언들을 정리해본다.
▲ 국내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고. 김진표 경제 부총리만 그렇게 말한다. 바닥이면 U자든 V자든 회복을 해야 하는데 나는 `한 일(一)`자 회복이 아닌가 싶다…. 내년 경영 화두는 오리무중이 화두다…. 세계에서 우리하고 FTA 체결할 나라는 바티칸, 하나뿐이다. 바티칸이야 만드는 것도 없으니까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12월20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 정부가 내놓는 각종 로드맵(road map)은 `로드(loadㆍ짐)맵`이다. 지도가 꼬불꼬불하고 터널도 뚫어야 할 것 같다.(12월15일 고건 총리 주최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로드맵의 비효율성을 꼬집으며)
▲ 주한 외국기업의 CEO(최고경영자)들은 한국이 행동은 없고 말만 많은 `NATO(No Action Talks Only) 국가`라고 비웃고 있다. 이제 토론보다는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12월12일 중국내 한국 기업인 협의체인 중국한국상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 시장은 개혁 대상이 될 수 없다. 공정위가 시장개혁 3대 로드맵 초안을 발표했지만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가능한 것이다. (10월31일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초청 간담회에서)
▲ 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을 그대로 두고 있다. 정부가 10년 동안 규제 완화를 외쳤지만 피부로 못 느낀다(10월6일 정부 주재의 규제개혁 간담회에서 “정부 정책이 양적인 규제에서 질적 완화로 전환하고 있다”는 고 총리의 발언을 반박하며)
▲ 옛날에 조선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골치아픈 아침의 나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CNN이나 폭스TV 등을 보면 한국이 투쟁으로 일관하는 `파업공화국`으로 보일 것이다.(9월24일 `허브코리아` 개막식)
▲ 기업은 전투를 하고 정부는 전쟁을 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화했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과시성 정책에 안주하는 것 같다.(9월18일 제3차 세계상공회의소 총회)
▲ 사람이나 기업이나 많이 먹는(매출) 것 보다는 체력의 연비(수익성)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나도 운동량을 늘리면서 80㎏이던 몸무게를 10㎏이나 줄였더니 적게 먹어도 에너지가 많이 나온다.(지난 5월 `연비론(燃比論)`을 주장하며)
박 회장은 이에 앞서 예전에도
▲떼로 몰려와서 떼를 쓰는 것이 바로 떼법이다. 노사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떼법론)
▲많은 한국 기업이 어느 사업이 좋다는 소리만 있으면 한꺼번에 뛰어들어 망했다. 들쥐떼 근성에서 탈피해야 한다(들쥐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기업인은 나무에서 떨어지면 사람은커녕 원숭이도 못 된다(원숭이론) 등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또
▲핵심 역량만 있으면 문어발은 물론 지네발도 괜찮다. GE는 대기업을 13개나 갖고 있다.(지네발론)
▲경제단체는 정부와 협조하는 동반자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왕사쿠라라는 욕을 먹더라도 협조 자세를 유지할 것이다.(왕사쿠라론)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다. 알짜 기업은 남기고 부실 기업만 팔려는 기업인들이 문제다(걸레론) 등도 박회장의 어록을 장식하고 있다.
<정리=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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