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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300만 돌파] 信保등 국책기관마저 “나몰라라”
입력2003-05-20 00:00:00
수정
2003.05.20 00:00:00
이연선 기자
`신용회복` 이대론 안된다(상)
중환자를 살리려면 우선 종합적인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외과적인 수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과, 마취과 등 모든 전문의가 동원돼야 한다. 물론 환자가 살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워크아웃 제도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개인워크아웃제도는 의사라고 할 수 있는 금융회사들이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병원 격인 정부도 환자를 받아놓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의사들만 바라보고 있다. 환자는 환자대로, 병원과 의사들은 자기들대로 모두 이기적인 대응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제 환자는 매일 5,000명씩 늘어나 300만 명이 훌쩍 넘었는데 수술실에 들어간 환자는 겨우 2,100여명 뿐이다.
◇신용불량 `남의 집 일?`=금융감독원은 지난 23일 `신용회복지원제도 실효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정부의 통제를 받는 금융기관과 단위 농ㆍ수협 등 소규모 금융회사까지 가입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개인워크아웃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모든 금융기관이 참여해야 한다. 은행 등 5곳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협약기관 4곳의 동의를 얻어 개인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라도 미가입 금융기관인 신보에서 채무상환을 재촉할 경우 4곳에 앞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참하지 않으면 협약가입상환계획이 지켜지기 어렵고, 결국 개인워크아웃도 실효성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개인워크아웃제도가 겉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금융회사들의 부정적인 태도다. 가입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곳은 고작 자산관리공사(KAMCO) 한 곳 뿐이다. 단위 농ㆍ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도 일반 금융회사와 달리 조합원을 대상으로 거래한다는 특성을 내세워 차일피일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단위조합의 경우 현행 협약이 조합 사정에 맞지 않고 분담금도 부담스러워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농협, 신협 등 전국에 걸친 단위조합 4,500여 곳에서 돈을 빌린 신용불량자가 전체 신용불량자 300만명의 10%인 30만명에 이른다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분석을 감안할 때 단위조합의 가입이 마냥 미뤄질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도 이에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억지춘향격으로 신용회복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정작 신용회복의 핵심인 금융회사의 가입에 대해선 `자율협약`이라며 개입을 꺼리고 있다.
◇가입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협약에 참가한 금융회사들도 소극적이기는 매 한가지다. 외환카드는 협약기관으로 등록하고서도 내야 할 분담금을 미루고 있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은 최근에야 분담금을 내겠다고 했다. 분담금은 채무금액과 신용불량자 수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들 금융회사는 다른 회사와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담금은 업체별로 겨우 1억~2억원 정도다. 푸른상호저축은행은 협약기관이면서도 개인워크아웃 회의에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개인워크아웃 적격자로 판정, 동의서를 보내면 100% 동의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에 떠밀려 협약기관이 됐지만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통해 상환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이자율을 조정해줄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심의위원회 심사를 모두 거치고 최종적으로 금융기관에 동의를 요구하면 오히려 중간에 이들을 빼내 자기 회사에 대한 채무만 먼저 갚으라고 제안하는 이기적인 협약기관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가입 금융기관들은 오히려 개인워크아웃 제도로 인한 모럴해저드를 걱정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굳이 다른 외부기관에 연체를 맡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외형은 금융회사 간의 협약체계이지만 정부 주도로 만든 기구라 채무자의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협약기관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나서서 협약에 들어온 금융회사에 대해 명령할 권한도 없고 금융감독당국이 직접 앞에 나서서 지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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