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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훼손 법대로(사설)
입력1997-10-17 00:00:00
수정
1997.10.17 00:00:00
문민정부가 개혁중의 개혁으로, 또 손꼽는 치적으로 내세우는 금융실명제가 도마위에 올랐다.실명제 전격실시에 따른 부작용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데 정치에 의해 훼손당함으로써 빈 껍데기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8월 실시때 이미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 했다.
최근 신한국당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친인척 예금내용을 폭로하면서 구체적 계좌번호까지 밝혀 실명제의 비밀보장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실명제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명령」이라는 긴 이름이 설명하듯 핵심이 두가지다. 하나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자는 것이고 다른 축은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다.
실명제는 애초에 걱정했던 부작용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가차명계좌가 온존하고 사채시장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자금흐름이 왜곡된 채 그대로이고 금리가 내릴줄 모른다. 중소기업 자금난이 더욱 악화됐으며 과소비가 극성이다.
실명제가 목표한 경제정의 실현은 요원한 상황이다. 정경유착 고리차단과 깨끗한 정치, 건강한 경제는 아직 허상으로 남아있다.
실명제 성공의 필수요건인 비밀보장 마저 깨졌다. 긴급명령에는 금융기관 종사자는 명의인의 요구나 동의없이 금융거래 내역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도 없다. 다만 법원의 영장이나 국세청의 탈세조사, 재정경제원장관·은행감독원장·증권감독원장·보험감독원장의 검사를 위한 요구만 예외로 하고 있다.
이 예외규정이 아닌것이 분명한 이번 신한국당의 폭로 정보 제공자는 실명제를 위반한 것이다. 자료를 제공받아 공개한 신한국당도 비밀보장 규정을 무력화하고 실명제를 정치에 이용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
서민들은 실명제를 지키며 정부정책에 순응,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송금을 하려해도, 무통장입금을 하려해도 어김없이 신분확인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힘있는 정치권은 실명제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고 오히려 정쟁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실명제가 정착될 수 없다. 정부가 개혁과제인 실명제를 성공시키려면 법대로 해야한다. 개인 거래 내역을 캐고 정보를 흘려 실명제를 위반한 당사자를 밝히고 법대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더불어 비밀보장을 제도적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실명제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고 정착될 수 있다. 또 다른 위법사례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비밀보장 훼손으로 빚어질 경제 파장이다. 사생활 침해와 경제활동 위축이 걱정되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금융거래 내역이 감시당하고 있으며 경쟁기업이나 외국기업에 유출될 수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또 현금거래와 현금퇴장을 가속시킬 것이다. 그만큼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자금 흐름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비밀 보장없이 실명제가 성공할 수 없다. 정권말기라해서 법이 우숩게 보여서는 안된다. 실명제를 실패한 개혁으로 포기하지 않겠다면 법을 법대로 엄격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실명제를 살리고 정책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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