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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공화국] 4. 전시용 구조조정
입력2001-06-07 00:00:00
수정
2001.06.07 00:00:00
컨설팅등 수백억 투입불구 실속없이 포장만 번지르르"컨설팅이다 뭐다 해서 수백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뭐 달라진 게 있습니까". 한 대형 시중은행의 임원은 외환위기 이후 선진금융 기법 도입과 체질개선을 위해 외국 컨설팅 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경영진단을 받고도 여전히 후진적 영업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은행들의 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중소기업 및 소매금융 공략을 강화해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해답과 획일적인 연봉제 및 사업부제 도입 등이 고작입니다. 한마디로 돈만 날린 셈입니다. 그 뿐입니까. 아마 국내 은행 및 금융시장에 대한 많은 정보도 함께 날아갔을 겁니다".
일례로 우리금융그룹의 자회사로 새출발 한 한빛은행의 경우 이덕훈 행장의 취임과 함께 지난 99년 폐지했던 기능식 지역본부제를 다시 도입했다.
무려 9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맥킨지 컨설팅을 받고 이른바 '피어그룹(동일점질의 점포를 묶어 함께 관리하는 제도)'등 여러 선진제도를 도입했으나 잇단 대형 금융사고 및 영업력 저하등 부작용이 큰 반면 당초 기대했던 별다른 성과가 없자, 현실에 맞게 조직을 다시 정비하는 '결단'을 내린 것.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한빛은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대부분의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특히 정부와 경영개선약정(MOU)을 체결한 은행들의 경우 경영개선을 위한 필수요소 였던 컨설팅을 통해 조직을 대폭 정비했지만, 사업부제등 소위 말하는 선진금융제도가 정착됐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은행은 아직 한 곳도 없다.
자신이 모르는 내부 모순을 지적해주고 바람직한 경영전략에 대해 조언해 준다는 컨설팅의 긍정적 효과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외국 컨설팅사의 한국적 토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받아들이는 쪽도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낭비요소가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빅딜, 부실 기업 및 금융회사 퇴출등 그동안의 각종 거창한 정책들도 명분과 시한에 ?겨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전시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몸에 맞지 않는 옷'으로 전락한 컨설팅
국내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경영 및 조직자문, 각종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해외업체 등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으면서 쏟아부은 돈은 지난해 까지 무려 550억원이 넘는다. 현재 진행 중인 컨설팅 비용까지 합하면 최소 6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각 은행들이 이처럼 거액을 쏟아 부으면서 '포장물'은 바꿨지만 정작 내용물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사업부제 도입이니 해서 명함만 부장에서 팀장으로 바뀌었고, 임원들도 대외적으로 부행장이나 본부장으로 불릴 뿐 하는 일은 그대로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너도나도 소매금융에 뛰어들고 있는 것 정도.
"외환위기 이후에는 외부 컨설팅을 받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각각의 조직에 가장 알맞은 조직개편이나 영업전략 수립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금융계는 그것(선진금융기법)이 최선이니까 무조건 하라는 식입니다".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무작정 미국식을 중심으로 한 해외제도의 도입을 반강제로 강요하는 정부에도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 이벤트 성 '구조조정' 난무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각종 정책들을 들여다 보면 이 같은 전시용 내지 이벤트성 구조조정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한때 국내 산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던 빅딜의 경우도 산업과 금융시장내 구조를 정확히 관찰하지 못한 채 정치논리에 말려 단지 통합으로 인한 당장의 생색내기 효과에만 집착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퇴출 작업도 마찬가지. 지난해 실시된 '11ㆍ3 기업퇴출'은 이미 죽은 기업의 이름만 나열하는 '부관참시'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상시퇴출제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기업퇴출을 언제까지 몇 개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들은 스스로 책임지고 부실기업을 솎아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업들만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부실 금융회사 정리작업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신속성' '적재적소'와는 거리가 멀다. 부실 생보사들의 경우 노조반발에 부딪히면서 2개월 가까이나 표류했고, 그 과정에서 조직이 망가져 아까운 공적자금만 낭비했다.
영업정지를 당한 신용금고 매각과 관련해서도 '예금가지급금 일시상환' 문제를 놓고 금감위와 예금보험공사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다가 뒤늦게 이를 허용, 이미 퇴출된 금고들과의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진우기자
김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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