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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의장 부친, 직접 취조…고문 당했다"
입력2004-08-18 14:16:30
수정
2004.08.18 14:16:30
"모든 조사 도맡아" 일제때 진해 항공창 근로자 2명 증언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의부친 신상묵(辛相默)씨의 일본군 헌병 복무 전력이 드러난 가운데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신씨로부터 취조를 받거나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신 의장의 부친에게서 직접 취조를 받았다고 주장한 김장룡(金章龍.78)씨는 18일 "사진을 보는 순간 단박에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신상묵씨의 창씨 개명 이름)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에서 순천의원을 35년째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시게미쓰 오장으로부터 한 달이 넘게 조사를 받았으며 그의 부하 일본 헌병들에게 목도로 두들겨 맞는 등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1943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부산상고)를 졸업한 김씨는 담임 교사의 추천으로 진해에 있던 제51 해군 항공창에 군속으로 취업했다.
취업후 기숙사 생활을 한 달여 동안 하다 부대 인근에서 하숙을 한 김씨는 하숙을 함께 한 서울 경복고 출신의 항공창 입사동기생 차익환(車益煥.79.경기도 고양시)씨 등 5-6명과 항일운동 사상학습을 했다.
그러나 그룹내 한 동료(이후 프락치 활동을 한 일본 헌병 오장 이희정으로 밝혀짐)의 밀고로 검거돼 헌병대에서 한 달이 넘게 모진 취조를 당했다.
김씨는 "당시 시게미쓰는 주임 조사관이었고 헌병대에 있는 동안 모든 조사는그가 도맡았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그는 배후를 밝히라고 집요하게 추궁했고 배후가 없다고 버티면 일본헌병들이 밖으로 끌어내 옷을 벗긴채 뾰족한 돌밭에 꿇어 앉히고 움직이면 목도로 머리와 등을 마구잡이로 내리쳤다"고 증언했다.
이에 반해 동기생 차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1944년 7월 진해 헌병대에서 시게미쓰 구니오 명찰을 붙인 헌병 군조로부터 취조를 받으면서 심한 고문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차씨는 "이 헌병 군조는 나를 거꾸로 매달고 코에 물을 붓는가 하면 목도로 왼쪽 다리를 심하게 치는 등 두 달 가까이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차씨는 이어 "당시 이 헌병군조가 한국인임을 알지 못했고 나중에 진해 형무소에서 동료 수감자들로부터 대구사범학교 출신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으나한국 이름은 몰랐다"며 "17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신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와 차씨는 당시 이 일로 해군 경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과 2년6개월을 각각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지금의 소년원)에서 8개월간 복역하다 해방과 동시에 풀려났다.
한편 김씨는 "취조 당시 조사관 시게미쓰가 '대구사범학교를 나왔다'고 한 말을 기억해 해방후 한때 차씨 등과 진해로 내려가 그를 추적했지만 실패했다"며 "최근신문에 실린 내용과 사진을 보고 그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해방후 2년여 동안 교사생활을 하다 대학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입학, 졸업후 줄곧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에 통증을 달고 사는 차씨는 김씨와 함께 지난 2002년 5월 국가유공자 인정 신청을 냈으나 복역 사실만 확인됐을뿐 독립운동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각하됐다.
(부산.고양=연합뉴스) 이종민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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