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는 속도조절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경기침체를 얼마만큼 심각하게 보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나아가 이성태 한은 총재가 추가 금리인하 여지를 내비쳐 기준금리는 1.5% 안팎까지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한은은 또 정부가 국채 매입을 요청하면 적극 응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양적완화 카드도 뽑아들 방침이다. 경기방어를 위한 한은의 공격적 기조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유동성 함정 우려는 기우=기준금리 인하로 한은은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만에 3.25%포인트나 내리게 됐다. 2%는 사상최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은이 유동성 함정을 우려해 0.25%포인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경제주체가 반응하지 않는 상황. 속된 말로 ‘식물 금리정책’이 된다는 뜻이다. 한은은 그러나 지난 1월에 이어 이번에도 0.5%포인트라는 중폭 행보를 이어갔다. 한은의 과감한 조치는 온통 빨간불로 도배돼 있는 최악의 경기지표 때문이다. 수출은 지난달 32.8% 급감했고 신규 취업자 수는 10만3,000명 감소했다. 소비는 4개월 연속 감소세고 설비투자는 지난해 12월 24.1% 급감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이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1980년 9월 이후 최저치일 정도로 악화일로다. 한은도 이날 통화정책방향 자료를 통해 “국내 경기는 수요ㆍ생산ㆍ고용 등 경제 전부분에 걸쳐 빠르게 위축되는 모습”이라며 “향후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 성장세의 급락 및 내수침체로 성장의 하향 위험도가 매우 크다”고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기준금리 1%시대 눈앞=경기하강 속도가 심각해짐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총재는 “지난해 4ㆍ4분기 경제활동 수준이 워낙 크게 위축됐기 때문에 올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달까지 견지했던 제로성장과 마이너스 성장 사이에서 무게중심이 마이너스 쪽으로 쏠렸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이어 “금리조정 여부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해 추가 금리인하를 강하게 시사했다. 기준금리 1%시대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단 금리가 단기간에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속도조절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앞으로 한두 차례 금리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인하 폭은 종전처럼 0.5%포인트 이상씩은 어렵다는 얘기다. 한은이 앞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두번 내리면 기준금리는 1.5%까지 내려간다. ◇양적완화 카드 적극 모색=이 총재는 “아직 유동성 함정을 크게 걱정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금리정책이 잘 먹히지 않으면 다양한 양적완화 수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증권사 환매채권(RP) 방식 자금공급, 채권시장안정펀드 지원 등 기존 정책을 계속 활용하고 필요시 기업어음(CP) 매입 방안 등의 과감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부의 추경편성 예산과 관련한 재원조달에도 한은의 역할을 다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정부의 국채 직매입(인수) 요청을 묻는 질문에 “국가 경제를 잘 끌고 가기 위해 중앙은행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면 중앙은행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한은은 정부로부터 직접 국채를 인수하기보다 지금처럼 금리상승 등 문제가 생길 시 유통시장에서 단순 매입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협조를 구할 경우 적극 응하겠다는 얘기다. 한은은 과거 적자보존을 위해 양곡증권을 직접 사들이는 등 정부로부터 직접 국채를 인수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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