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알만한 돼지 모양이 찍힌 고무틀에 왁스를 두세 방울 떨어뜨린다. 왁스가 딱딱하게 굳으면 돼지모형에 석고를 입히고, 여기에 800도 이상의 뜨거운 열을 가해 표면에 붙어 있는 왁스를 녹여 없앤다. 완성된 석고틀에 펄펄 끓는 ‘금물’을 들이붓는다. 60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인 정해(丁亥)년을 환영하는 진짜 ‘황금돼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2007년을 사흘 남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봉익동의 순금 세공업체 진성. 직원 서너명이 휴대폰 줄에 매달 한돈짜리 황금돼지를 만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올 겨울 들어 최고로 춥다는 바깥 날씨는 마치 딴 세상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황금돼지 휴대폰 줄, 황금돼지 메달, 황금돼지 모형 등이 내부를 가득 메운 이 공장은 밀려드는 주문에 ‘돈(豚)벼락’을 맞은 듯 분주하다. 김기섭 사장은 “한달 전부터 황금돼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문이 폭주해 밤낮없이 돼지를 찍어내느라 정신이 없다”며 희색이 만면하다. 5평 남짓한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달랑 6명. 지난해 전체 금 관련 생산 물량의 10%에 불과하던 황금돼지 상품의 비중이 올해 말 60%로 급증하면서 직원 모두가 쉴 틈 없이 황금돼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 사장은 “요즘 금값이 뛰면서 장사가 안 돼 종로 귀금속가게 중 문을 닫은 곳이 넘쳐났는데 황금돼지 덕분에 다시 손님이 찾아와 다행”이라면서 “규모가 큰 공장 중에는 한냥(10돈)짜리 ‘황금 통돼지’를 하루에 200개씩 찍어내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한냥짜리 순금 통돼지 가격이 85만~1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에 무려 2억원어치를 생산하는 셈이다. 황금돼지 공장뿐 아니라 인근 귀금속상가도 황금돼지 특수에 꽁꽁 얼어붙은 경기가 눈 녹듯이 녹아 내리고 있다. 주얼리시티 1층에서 귀금속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7만~8만원대 황금돼지 휴대폰 줄이 가장 인기”라며 “하루에 사가는 손님만도 2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종로4가 세운상가에서 귀금속도매상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가족ㆍ친지를 위한 연말 선물로 한돈에서 열돈짜리 장식용 황금돼지가 하루에 30여개씩 나간다”며 “구색 맞추기용으로 판매했던 황금돼지를 일부러 진열장 맨 앞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다산과 풍요ㆍ부(富)를 뜻한다는 2007년 ‘황금돼지 해’를 맞아 모처럼 종로 귀금속단지가 분주하다. 황금돼지 공장 150여곳을 비롯해 금은세공업체 1,000여곳과 귀금속도매상가가 밀집한 이곳은 2007년 내내 ‘황금돼지 특수’가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정해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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