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18여년간 평행선을 달려온 한중 배타적경제수역(EEZ) 협상을 내년 중 공식 가동하기 위해 올 하반기에 사전 물밑접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양국 정상이 지난 3일 정상회담에서 내년에 해양경계획정 협상을 가동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작업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근혜 정부 임기 내 협상 타결은 요원해 보이며 설령 조속타결이 된다 하더라도 양국 간 해양영토 분쟁 해소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유일하게 EEZ 협상을 타결 지은 사례는 베트남이 유일한데 정상회담에서 물꼬가 트인 후 양국 공식 협상의 최종 타결까지 5년 이상이 소요됐다. 그나마 어렵게 EEZ를 확정 짓고도 중국과 베트남은 해당 수역 내에서의 자원개발 등을 놓고 최근까지도 무력충돌을 이어가며 험악한 관계를 풀지 못하고 있다.
4일 우리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외교부는 연내에 최소 두 차례 중국 외교부 측과 물밑접촉을 갖고 내년 중 가동할 EEZ 협상의 구체적인 일정과 협의체 구성 등을 조율할 예정이다.
한 당국자는 "1996년부터 한중 간 EEZ 협상은 양국 외교부 국장급이 주도했지만 내년부터는 차관급이나 1급(차관보급)이 협상 테이블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협상 주체도 양측 외교 당국이 아닌 범정부 차원으로 격상될 것 같다"고 전했다.
협상 내용도 기존에는 EEZ 획정에 대한 국제법상의 원리나 판례와 같은 교과서적이고 일반적인 이슈 중심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양국이 실제로 처한 서해안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이슈를 다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측 역시 정상 간 합의가 이뤄진 만큼 당초보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다만 양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EEZ 협상이 순산에 이를지는 미지수다. 우선 우리 측의 범정부적 준비가 너무도 미비하다. 양국 간 공식 협상이 개시된 지는 16여년이나 됐지만 협상주체인 외교부를 제외하면 다른 부처들은 EEZ의 가장 기초적인 현안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해 심지어 언론 보도와 같은 비공식 자료로 부랴부랴 경과 과정을 파악할 정도다. EEZ에는 수산업, 에너지·광물 등 자원산업, 해운 등 물류산업, 해양치안 등이 여러 분야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해양수산부·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 정부의 협상전략이 무언지조차 외교부로부터 듣지 못한 상태다. 또한 EEZ는 간접적으로 한중 간 방공식별구역 조정 문제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국방부 등과 치밀한 정보 공유가 필요하지만 이 역시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가 범부처 차원의 협상 체계를 짜고 정보 공유와 공통의 전략 수립을 하기까지는 최소한 1년여가 걸릴 수 있다는 게 통상 분야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인 협상의 진전은 내년 하반기 이후부터나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내년 말을 넘기면 다음 대통령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국정 후반기에 들어가는 만큼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영토 협상을 현 정부가 임기 후반부에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EEZ는 해안선으로부터 370㎞ 이내의 수역인데 한중 간에는 서로 주장하는 수역이 겹쳐 어선 등의 조업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그동안 우리 측은 양국 해안선의 중간선을 EEZ의 경계로 삼자는 '등거리 원칙'을 주장해왔으나 중국은 인구 수, 영토, 해안선 등의 길이에 비례해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는 '영토 자연연장론'을 굽히지 않아왔다. 양국 정부는 EEZ 협상시 대륙붕 경계도 확정해야 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유엔의 해양법협약은 EEZ나 대륙붕 경계에 대해 관련국들이 '상당 기간' 이내에 합의를 하지 못하면 국제사법재판 절차를 따르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한중 모두 각자 국제사법재판절차는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어느 일방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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